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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세종을 노무현市 만들자 (상)】“자랑스런 노무현 행정수도정신 퇴색”...총선 이슈된 '국회.청와대' 세종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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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를 미국의 워싱턴 주처럼 노무현시로 만들자는 여론이 점자 일고 있어.
-1971년 김대중후보가 박정희 대통령보다 7년 먼저 대전행정부수도 공약.
-노무현 정신은 청와대.국회 옮겨 수도권 인구과밀 해소인데 분원 분실은 퇴색.
-16년째 각종 선거 때마다 청와대. 국회 옮기자 너도나도 공약...내년 총선에도 충청인 속이나.

 

세종시는 누가 뭐래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높은 혜안으로 이뤄진 도시다. 하지만 그 노무현 정신이 퇴색되어 도시계획이 변경되고, 이전을 계획해 완성하기로한 행정수도가 청와대.국회대신 제 2집무실, 분원설치로 바뀌고 있다. 그러나 여야를 떠나 세종시를 미국의 초대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이름을 따 워싱턴 주가 생겼던 것 처럼 세종시를 노무현시로 하자는 의견을 상,중,하 시리즈로 게재한다< 편집자 주>


[sbn뉴스=대전] 신수용 대기자 = 지난 2017년 5.9 대선 때 여야 대선후보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법을 고쳐서라도 청와대와 국회를 옮기겠다고 충청도민들에게 약속했다.

그중에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던 문재인 대통령은 충청권 유세때  대통령이 되면 "개헌을 해서라도 행정수도 완성하겠다"는 취지로 공약했다. 

이를 반대하는 충청인은 거의 없었다.

-김대중대통령이 박정희대통령보다 먼저 행정수도 공약...이후 노무현이 구체화.

1971년 4월3일 신민당 김대중 대통령 후보는 대통령선거 대전 유세에서 대전을 행정부 수도로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당시 김 후보의 대선참모로 활동했던 고 김영배 국회부의장(논산출신. 전 서울 양천갑국회의원)은 기자에게 “당시 박정희후보가 얼마나 탄압을 했느냐면, 대전유세를 가면 호텔이고 여관이고 잠잘 곳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그때 “김 후보에게는 기관원이 달라붙고 대전(숙소를 정해)에서 잠자고 다음날 서산, 태안, 서천 등을 유세 가야했는데 난감했다. 결국 고 남정섭 변호사(고 대전일보 전 회장, 남재두 대전일보 회장 선친)의 대전 인동의 집에서 이틀씩 묵었고, 그 바람에 대전일보가 박정희 정권 때 호되게 세무조사를 받았다”라고 말했다.

이런 인연으로 김대중 후보는 직접 만나거나 김영배, 김수진(전 김대통령 특보), 이용희 전의원, 남궁진수석, 등을 보내 소식을 전하는 등 남변호사와 가깝게 지냈다.

고 김 부의장은 남 변호사의 얘기등을 듣고 대통령이 되면 대전으로 행정부를 옮겨 행정수도로 만들려고 했다”고 필자에게 전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계를 은퇴했다가 최초의 광역단체장을 뽑은 1995년 6.27 지방선거를 앞둔 그해 5월 대전일보에 “정치를 하더라도 ‘이기택이 맡은 민주당’과는 안하겠다”며 정계복귀를 선언해 1997년12월 대통령에 오른다.

김 전 대통령은 국회와 청와대를 출입기자인 필자에게 “남 변호사와 대전일보와 깊은 인연이 있다. 박정희씨가 김영삼, 김옥선씨(서천)제명 등 탄압을 일삼을 때 대전일보도 세무조사를 받느라고 욕봤다”고 전해주기도 했다.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재직한 1977년 2월10일 연두기자회견에서 대전을 임시행정수도로하는 구상을 발표하고 그해 3월 16일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 백영훈 청와대 경제수석을 중심으로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내 작전명 ‘신수도 건설단(실무기획단)을 발족했다.

박 전 대통령은 그해 7월 23일 임시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법률제 3007호)그리고 8월 행정수도 이전을 위한 백지계획(안)마련 1차 보고서. 충남 공주 장기를 임시행정수도 후보지로 잠정확정했다. 그러나 2년뒤 10.26사태로 백지계획은 물건너 갔다.         

이후 33년이 지난 지난 2002년 수도권 인구과밀과 주요기관 집중으로 국가발전이  불균형을 이루는 점을 지적한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이를 충청권에 신행정수도를 건설하겠다는 공약을 내걸면서 다시 점화됐다.

노 전 대통령은 당선 후 2003년 1월 인수위원회에 이를 100대 추진과제(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 과제에 신행정수도 건설을 포함)로 선정했다.

그해 2월25일 취임식 당일 가진 첫 노무현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필자가 “첫 조각을 보니 대통령 공약인 신행정수도건설을 위해 부총리급 책임자를 둔다고 해놓고 왜 없느냐”고 묻자 “신 국장님의 질문처럼 반드시 신행정수도건설계획을 추진한다는 약속을 지킬것이고요. 이를 취임하면서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밝힌다.지역적인 안배는 소숫점까지 맞출 수는 없었다”고 거듭 답했었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한 뒤인 4월14일에는 신행정수도건설추진기획단 지원단을 발족하고 그해 6월에 노 전 대통령이 균형발전을 위한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밝히면서 순조롭게 추진됐었다.

2004년 1월 청와대와 국회 등을 신행정수도 후보지로 옮기는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공포하고 이어 5월 신행정수도 건설추진위원회(위원장 김안제), 자문위원회(위원장 강용식)를 발족했다.

신행정수도 건설 입지는 그해 8월11일 연기.공주지역으로 확정했으나 야당과 시민단체의 위헌소송을 제기해 그해 10월21일 헌재가 청와대와 국회가 옮기지 않으면 관습헌법에 따라 위헌이라고 결정해 제동이 걸렸다.

때문에 노 대통령은 청와대와 국회의사당이 연기.공주지역으로 옮기는 것이 곧 실질적인 행정수도라며 적극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노무현 정신의 근간, 청와대,국회이전이 대통령세종집무실,국회분원설치로 바뀌어”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수도권 지자체의 반발과 당시 한나라당의 반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애쓴 청와대와 국회이전이 답보였다. 

그런 와중에 청와대와 국회는 서울에 그대로 남아 이전이 어려운 국면에 빠져들자 선거 때마다 이를 들먹였다.

지금 충청인들 중에는 "자랑스런 노무현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추진하려던 행정수도 이전, 그중에도 청와대와 국회의사당 세종이전을  또 총선이 다가오니  울궈 먹는다.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데... 할바엔 늦더라도 노 전 대통령의 계획대로 청와대 전체와 여의도 국회 전체가 옮겨와야 하는데 찔끔찔끔 (선거때) 써먹는다"고 비판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세종 행정수도 완성을 위해 청와대 전체와 국회의사당 전체가 세종으로의 이전문제가 각종 선거때마다  단골로 등장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변했는 지는 공식적인 기록이 없다.

그간  노무현 정신을 살리려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심대평 전 자유선진당 대표등이 나서 2012년 4월 세종지역구 총선 때 맞붙었으나 두사람 모두 청와대와 국회 이전을 집중 제기했다.

이해찬 대표는 2002년  노무현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기획본부장으로서 대선승리에 기여했고 국무총리 재직시 신행정수도를 추진해온 주역이다.

이어  2016년 4월 총선에서도 당시 무소속이던 이해찬 대표와 새누리당 박종준 후보도  이 부분에서 같은 입장을 보였다. 

그때 처음으로 이해찬 후보가 청와대 세종집무실과 국회세종분원이 들고 나온 공약이 공식적이다.

김종인 체제의 민주당 공천에서 컷아웃된 이 후보는 2016년 3월3일 총선 출마 선언문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님과 함께 세종시를 기획하고 직접추진한 사람으로 세종시에 무한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라며 “세종시민이 ‘이해찬이 시작한 세종시, 이해찬이 완성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2016년)4.13 총선은 세종시의 차질없는 완성을 가름하는 매우 중요한 선거”라면서 “국회분원과 청와대 제2집무실을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국회분원은 법개정도 필요없고, 청와대 2집무실설치는 대통령 결단만 있으면 오늘이라도 가능하다”라고 말한뒤 “KTX세종역을 신설하고 세종시를 과감한 인센티브를 도입해 글로벌 시장에서 결쟁하는 스마트 도시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이후 이 후보는 7선에 성공했으나 당초 청와대 세종이전이→청와대 2집무실 세종설치, 당초 국회의사당 세종이전→국회세종분원으로 바뀌었지만 실현이 안됐고, KTX세종역신설을 충청권 갈등을 초래했다. 

그러더니 지난 2017년 말부터 청와대 이전요구가 다음해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앞두고 슬그머니 →분실격인 ‘청와대 세종집무실’로, 국회의사당 이전약속이 →‘국회의사당 세종분원’으로 바뀌어 마치 청와대와 국회가 오는 듯 변경된 것이다.


물론, 오죽하면 그렇겠느냐며 국회분원이나 청와대 세종집무실 추진을 옹호하는 세종지역 더불어민주당 고위관계자나 시민단체관계자의 얘기도 충분히 납득되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문 대통령이 대선후보일 때 대선공약으로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에서 집무를 보겠다던 광화문집무실 계획이 무산되자, 세종지역의 정치인과 시민단체가 '옳커니'하며 광화문 청와대집무실을 세종시로 가져오겠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책임자인 유흥준 전 문화재 청장이 번복하자 세종정치인 몇몇과 일부 시민단체가 그 광화문 대통령집무실 무산대신 그 대통령집무실을 우리 세종에 분원을 만들자고 나섰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난 4, 5월 일부 시민단체들이 나서 청와대 이전이 아닌 분실격인 대통령세종집무실 국민청원을 넣었으나 전국에서 겨우 1만3000명이 동의에 그치는 등 호응도 얻지 못하고 격하(格下)된 셈이다.

분실, 분원 격인 대통령세종집무실은 청와대 이전이 아니다.

이렇게 일부 세종지역에 있는 정치인들이 충청인, 그것도 세종시민을 우롱하는 것이다.

반드시 충청역사가들은 이를 정확하게 기록할 것이고, 훗날 일부 인사들과 이에 추종하는 일부 세종시의원, 시민단체, 언론장학생의 꼼수는 반드시 심판이 뒤따를 것이다. 임기동안 재직하는 몇 년후에는 세종을 떠날 인사들의 말장난에 충청이 놀아나고 있는 셈이다.

28일 <sbn뉴스>의 탐사기획팀과 '충청 500인 검증 위원회'와 함께 공동으로 국회의회록, 중앙선관위 및 각 정당 공약과 역대 대통령  주요연설문, 주요언론과 세종시 관련자료들을  분석한 결과 2002년 대선부터 현재까지 세종행정수도완성을 위한 청와대와 국회이전이 단골 공약으로 등장했음을 확인했다.  

<중. 하로 기사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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