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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기획탐방】천방루(千房樓)에 올라...시인 구재기와 함께하는 '舒川 山河(서천산하)'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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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를 시작하면서

객지에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19793월 구두끈을 졸라매고 대전으로 출발하여 주로 홍성에서 머물며 살아왔다. 그리고 201211월 겨울바람이 조금씩 살아나는 날 고향의 집에 몸을 내려놓았다.


33년만의 일이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 고향의 바람이 먼저 반겨주었다. 바람이 맛있었다.


그래, 이제 고향의 하늘 아래 펼쳐진 고향의 땅을 밟아보기로 하자. 고향을 빛낸 인물들, 조상이 남겨놓은 유물과 유적들, 그리고 아름다운 산하의 품에 안겨보고 싶었다.


고향의 품속에 푸욱 빠져들기로 하였다. 잦은 고향의 말씀을 소중하게 모실 것이다.

 

충남 서천 시초 신곡리 출생

1978[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휘어진 가지와 시선집 구름은 무게를 버리며 간다등 다수

충남도문화상, 시예술상본상, 충남시협본상, 한남문인상, 신석초문학상 등 수상

충남문인협회장 및 충남시인협회장 역임

현재 40여년의 교직에서 물러나 시초면 신곡리 <산애재蒜艾齋>에서 야생화를 가꾸며 살고 있음

Cafe : 산애재(蒜艾齋 http://cafe.daum.net/koo6699)

 



001. 천방루(千房樓)에 올라 충남 서천군 문산면 신농리


2018510일 목요일어둠에서 아침을 불러오던 아침 햇살이 유혹하기 시작한다.


방안으로 스며들어 온몸이 간질거려온다. 무르익은 봄, 햇살부터 먼저 부드럽고, 햇살로부터 불리워진 나뭇가지에서 새싹들이 점점 초록으로 물들여진다.


완연한 봄이다. 온몸이 불숙 돋아나는 듯하다. 방안에서 밖으로 몸과 마음을 불러낸다. 행장을 꾸미게 한다. 몸마다 근질거린다. 그렇다. 천방산에 오르기로 하자. 아니 천방루에서 멀리 가까이의 풍광을 바라보며 가슴 속의 속진(俗塵)을 마음껏 뱉아 보기로 하자.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천방산은 언제나 반갑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어디 가슴 속에서 천방산을 떼어놓고 살아온 적이 있었던가. 저 푸르러지는 기슭이려니, 야트막한 기슭에서 칡뿌리와 잔대를 캐어 먹던 곳, 졸졸졸 햇살을 타고 내려오는 신개천의 돌 틈에 슬금슬금 자리를 펼쳐놓던 그 가제 한 마리의 안부를 묻고 싶어진다.


저 사비의 백제탑(扶餘定林寺址五層石塔)을 평제탑(平濟塔)이라 제멋대로 이름하고는 탑신에 제 공을 기록하였다던 당나라의 소정방, 그 원수와 관련 있는 청방사의 전설에 새삼스레 이 작은 분노를 느껴보지만 수천 년 동안 말없이 아픈 이름으로 살아온 천방산의 애끓는 가슴을 먼저 다독여 달래보기도 한다.


문산면 신농리 천방산 입구, 잘 꾸며진 주차장에 이르러 안내지도를 바라본다. 그리고 둘레를 살펴본다. 작은 장자 하나 서있고, 자못 너른 광장에는 화단으로 꾸며져 있으나 봄가뭄 탓일까, 아직 꽃망울을 터뜨리기까지에는 조금 더 기다림이 있어야 할 모양이다. 작은 시냇물로 다듬어진 작은 웅덩이와 시내에는 아직 단 한 방울의 물도 흘러내린 기색이 없다. 완연한 건천이다. 그 목마름이 안타깝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천방산 정상으로 가는 길을 곁에 끼고 천방루 길을 택한다. 제법 가파른 길이다. 문득 길가에 작음 표지판이 보인다. ‘천방루 입구라는 안내 현판 글씨를 어깨에 짊어진 아치형 무지개문이 기다린다. 그러나 그 문 입구를 철저하게 막고 있는 것은 잘 자라난 잡초들이다. 무지개 문을 허리 굽혀 지나기보다는 오히려 그 곁으로 사람의 발자국으로 닦여진 길이 편하다.


물이 고인 웅덩이를 품고 있는 계단식 논배미가 모내기를 기다리고 있다. 개구리 몇 마리가 낯선 발자국에 놀란 듯 첨벙, 물속으로 숨어든다.



가파른 산길을 걷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춘다. 깎아지른 듯한 산길 언덕을 부여잡고 있는 표석 하나, ‘土地之神이라 쓰여져 있다. 작은 제단도 마련되어 있다. 땅을 맡아 다스리는 신()의 자리인 모양이다. 원래 민속에서는 땅을 맡아 다스린다는 신은 봄에는 부엌에, 여름에는 문에, 가을에는 샘에, 겨울에는 마당에 있으며, 그때 장소를 움직이면 화()가 있다고 한다고 전해진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어 삼가 고개를 숙이고는 가파른 길을 연이어 오른다. 때로는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때로는 발목에 발끝에 힘을 준다. 어느덧 너른 광장에 이른다. 주차장이다. 한쪽으로는 천방산 정산으로 오르는 길, 다른 한쪽으로는 천방산 둘레길로 이어진다고 안내 지도가 알려준다.


너른 광장에는 간단히 몸을 부드럽게 해줄 수 있는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고, 목마름을 풀어줄 수도며, 그리고 편안히 쉴 수 있는 정자까지 마련되어 있다. 돌탁자 두 개와 그 둘레를 얼싸안고 있는 돌의자 위에 짙은 나무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잠시 흐르는 땀방울들이 시원한 기운 속으로 절로 소멸된다. 절로 가슴이 열려진다.



천방루로 오르는 길은 모두 돌계단이다. 넉넉하고 여유롭게 놓여있는 돌계단의 운치가 신록빛과 조화를 이루어 싱그러움을 더해준다. 문득 춘원 이광수의 묵상록(黙想錄)에서 봄을 노래한 구절을 떠올린다. ‘길가에는 푸릇푸릇 풀싹이 돋고 젊은 벚나무와 살구나무 가지는 과년한 여자의 살 모양으로 윤이 흐른다.


그 윤 흐르는 껍질 속에는 생명과 기쁨이 충만한 피가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것이 보이듯 하고 들리는 듯하다. 더구나 볼록볼록 젖꼭지 같은 꽃봉오리들이 금새에 터질 듯이 통통 부푼 것을 보면 자연히 하염없는 한숨이 나온다. 봄이로다!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은 명절날 구경 나서는 아가들 모양으로 맘이 들뜨고 맘이 바쁘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한 방울식 떨어지던 땀방울이 마침내 낙하를 마치자 천방루 앞에 이르고 곁으로는 확 트인 풍광을 배경으로 하여 천방루 건립기가 오도카니 앉아있다. 건립기는 천방루가 1995720일에 새워졌음을 알려준다. 당시 재직하고 있는 문산면장이 건립기를 쓰고, 천방루 제작에 많은 힘을 모아준 추진위원장과 추진위원들의 이름, 그리고 제막비를 걸립해준 문산건설의 대표자 이름이 새겨져 있다.



마침내 천방루에 닿는다. 그리고 천천히 한 계단 한 계단 올라 품에 안긴다. 막혔던 가슴이 탁 터 오른다. 망국의 한을 품은 이름을 가지고 가슴앓이하면서도 이제는 당당하게 일어나 멀리 바라보듯, 미래를 내다보듯 의연하게 서 있는 천방루의 모습을 때마침 불어오는 짙은 봄바람의 향기를 온누리에 펼쳐놓는다.


천방산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천방루, 곧바로 천방산 최고봉인 4347.5m의 정상과 마주 앉아 너른 들을 굽어보며 우순(雨順)과 풍조(風調)를 기원하고 있다. 그리고 둘레를 에워싸고 있는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 이것은 다소곳 수줍은 몸짓을 얌전하고 있으나, 저것은 문득 솟았다가 겸허함을 보이는 산세는 천성에서 우러나오는 기개를 펼치면서 이웃과 나라사랑에 대한 신념이나 신의를 절대 굽히거나 바꾸지 않는 서천의 충절의 기상을 그대로 엿보인다.


그렇다. 천방산은 슬픈 이름을 가졌으되 좌절하지 아니하고 끊임없이 생기를 북돋워가면서 문산호의 물결처럼 여여하게 출렁이고 있는 것이다. 문득 멀리 바라본다. 봉선저수지의 거대한 물결이 상큼하게 쏟아져 내리는 오월의 푸른 햇살을 가득 품은 채로 주민들의 행복을 기원하듯 온몸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천방루(千房樓)에 올라

                                              구재기

 

얼마나 꾸밈없이

어리숙하게 살아가는데

깊은 구석까지 틈이 없었는가

 

어느덧 봄은 점점 깊어져

환한 대낮이 길어지기 시작하고

싹트는 연록이 겁 없이 지나면

쇠도끼를 버리고 금도끼를 거부할 때

 

바르고 곧게 살아가는 걸

여겨보는 눈빛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여느 바람이래도 균형 잃어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뜻대로만 앞으로 나아가는 걸 보면

굽힘없이 맞서는 건 부끄러운 일

 

자리를 비워내며

온 힘을 다하여 얼마나 지켜왔는가

흐르고 치솟는 일조차 여의려고

바람처럼 물처럼 지나갈 때

 

분별없이 그냥

그림자를 내려놓는 구름을 우러른다

마냥 푸르러지는 나뭇잎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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