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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인터뷰】구재기 시인, “내 고장 어느 곳이든 사랑으로 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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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타향살이한 구 시인, 산애재로 돌아와 작품 활동 이어가
구 시인, “알고 나서 고향 사랑하면 더 뿌리 깊은 사랑 될 것”


[sbn뉴스=서천] 나영찬 기자 = 이번 sbn뉴스-젊은서천에서는 본지에 시인 구재기와 함께하는 舒川 山河를 연재중인 구재기 시인을 만나봤다.

 

고향 떠나 타지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충남 서천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다니고 공주 사대부고에 진학했다. 이후 공주교대를 졸업한 후 1969년 서천 마산초등학교에 초임 발령받았다.


1979년까지 서천군에서 교편을 잡다 대전으로 가 한남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848월 홍성중학교로 발령이 났다.


이후 홍성군에서 교감까지 근무하다가 2012년 퇴임했다. 문단활동은 1978년 현대시학에 전봉건 선생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교편 잡으며 문단활동을 겸했다.

 

시인으로의 활동은?

충남문인협회회장, 충남시인협회회장을 했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안하는데 마음이 편하다. 책임을 맡는다는 것은 내 작업 이외에 신경을 많이 써야한다는 것이다.


이제 다 내려놓았으니, 그만큼 자유롭다. 내 생활에 내가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한다.


2012년 고향에 돌아오며 주민등록을 다시 서천군으로 옮기고, 아버지께서 짓고 물려주신 집에 산애재(蒜艾齋)’라는 당호를 붙였다. 내부수리를 하고 텃밭을 가꾸고 한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타지에서 오래 생활했지만 고향을 한 번도 버린 적이 없다. 초등학교 때 소풍을 가던 천방산에 대한 시집도 내고 했는데 주로 농사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1985년 쓴 농업시편은 큰내, 작은내, 도마천, 길산천을 배경으로 한다. 내 삶의 터로 삼았던 시초면을 배경으로 농토에 대한 애환과 삶의 투지를 중심으로. 작품 세계에서 한 번도 고향을 떠난 적이 없다.


시는 자기 체험에 상상을 더한 것이다. 작년에 모시에 관한 작품으로 한국문화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co)에서 1천만 원의 창작지원금을 받았다. 과거 우리 집 텃밭에 모시를 키웠었고 누이들은 모시를 했었다. 집은 나의 모든 산실이자 삶을 재조명해주는 곳이다.


떼려야 뗄 수 없다. 삶의 뿌리로 돌아와 과거의 회상으로 움터서 새로운 싹을 돋워내고 있다. 그것이 내 시의 세계라고 생각한다.


객지에 있을 때는 한 30년 그리워하며 써왔고, 돌아와서는 온몸으로 체감하면서 쓰고 있다. 고향에 오니 글이 더 잘 써지는 것 같고, 쓰는 것이 즐겁다.

 

본지에 舒川 山河연재 중이다. 소감은?

=내 고장을 샅샅이 알 수 있게 되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 감사하다. 연재하면 의무감이 생긴다. 카메라를 짊어지고 서천 동네를 뒤져보고 보고 듣고 하는 데 활력이 넘쳐흐르고 재미있다.


내가 몰랐던 내 고향의 모습을 찾아본다는 것은 내 뿌리를 찾는 것이다. 서천에 뿌리를 둔 내가 서천을 살펴본다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이고 즐거움인지 모른다.


알고 나서 사랑하는 것과 사랑해서 아는 것은 다르다. 알고 나서 사랑하면 훨씬 더 뿌리 깊은 사랑이 될 것이다.


고향 사랑은 곧 뿌리를 찾는 운동이고, 뿌리를 찾는 것은 고향에 대한 자신의 피와 땀과 정신세계를 되돌아보는 작업이다. 서천주민들이 내 고장 어느 곳이든 사랑으로 접하다 보면 서천은 빛을 찾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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