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n뉴스=서천] 나영찬 기자 = 이번 sbn뉴스-젊은서천에서는 본지에 ‘시인 구재기와 함께하는 舒川 山河’를 연재중인 구재기 시인을 만나봤다.
◇고향 떠나 타지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충남 서천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다니고 공주 사대부고에 진학했다. 이후 공주교대를 졸업한 후 1969년 서천 마산초등학교에 초임 발령받았다.
1979년까지 서천군에서 교편을 잡다 대전으로 가 한남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84년 8월 홍성중학교로 발령이 났다.
이후 홍성군에서 교감까지 근무하다가 2012년 퇴임했다. 문단활동은 1978년 현대시학에 전봉건 선생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교편 잡으며 문단활동을 겸했다.
◇시인으로의 활동은?
충남문인협회회장, 충남시인협회회장을 했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안하는데 마음이 편하다. 책임을 맡는다는 것은 내 작업 이외에 신경을 많이 써야한다는 것이다.
이제 다 내려놓았으니, 그만큼 자유롭다. 내 생활에 내가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한다.
2012년 고향에 돌아오며 주민등록을 다시 서천군으로 옮기고, 아버지께서 짓고 물려주신 집에 ‘산애재(蒜艾齋)’라는 당호를 붙였다. 내부수리를 하고 텃밭을 가꾸고 한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타지에서 오래 생활했지만 고향을 한 번도 버린 적이 없다. 초등학교 때 소풍을 가던 천방산에 대한 시집도 내고 했는데 주로 농사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1985년 쓴 농업시편은 큰내, 작은내, 도마천, 길산천을 배경으로 한다. 내 삶의 터로 삼았던 시초면을 배경으로 농토에 대한 애환과 삶의 투지를 중심으로. 작품 세계에서 한 번도 고향을 떠난 적이 없다.
시는 자기 체험에 상상을 더한 것이다. 작년에 모시에 관한 작품으로 한국문화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co)에서 1천만 원의 창작지원금을 받았다. 과거 우리 집 텃밭에 모시를 키웠었고 누이들은 모시를 했었다. 집은 나의 모든 산실이자 삶을 재조명해주는 곳이다.
떼려야 뗄 수 없다. 삶의 뿌리로 돌아와 과거의 회상으로 움터서 새로운 싹을 돋워내고 있다. 그것이 내 시의 세계라고 생각한다.
객지에 있을 때는 한 30년 그리워하며 써왔고, 돌아와서는 온몸으로 체감하면서 쓰고 있다. 고향에 오니 글이 더 잘 써지는 것 같고, 쓰는 것이 즐겁다.
◇본지에 ‘舒川 山河’ 연재 중이다. 소감은?
=내 고장을 샅샅이 알 수 있게 되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 감사하다. 연재하면 의무감이 생긴다. 카메라를 짊어지고 서천 동네를 뒤져보고 보고 듣고 하는 데 활력이 넘쳐흐르고 재미있다.
내가 몰랐던 내 고향의 모습을 찾아본다는 것은 내 뿌리를 찾는 것이다. 서천에 뿌리를 둔 내가 서천을 살펴본다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이고 즐거움인지 모른다.
알고 나서 사랑하는 것과 사랑해서 아는 것은 다르다. 알고 나서 사랑하면 훨씬 더 뿌리 깊은 사랑이 될 것이다.
고향 사랑은 곧 뿌리를 찾는 운동이고, 뿌리를 찾는 것은 고향에 대한 자신의 피와 땀과 정신세계를 되돌아보는 작업이다. 서천주민들이 내 고장 어느 곳이든 사랑으로 접하다 보면 서천은 빛을 찾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