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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기획탐방】용당진사龍堂津祠를 찾아서...시인 구재기와 함께하는 '舒川 山河(서천산하)'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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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 용당진사(龍堂津祠龍堂山서천군 장항읍 소재)를 찾아서

 

어느 곳을 찾아보아도 고장을 지켜왔던 옛 조상들의 역사와 문화가 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동백대교의 개통에 따라 금강과 연계한 용당진사 재현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용당진의 용왕굿이 장항의 여러 축제와 함께 장차 관광사업의 일환으로 발전되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2018년 7월 5일 금요일 오후


가뭄속의 여름 날씨는 온몸을 훅훅 달아오르게 한다.


몇 발자국 떼어놓기가 바쁘게 이마에서 흐르는 땀방울은 달랠 수가 없다.


그러나 발걸음은 가볍다장항으로 달리는 차창의 문을 활짝 열어놓으니 밖으로부터 밀려서 들어오는 열기가 오히려 더 따갑다.


차창을 꼬옥 닫아버리고 에어컨을 켠다.


그러나 한창 더위가 가실 무렵 이미 핸들에서 손을 뗀다쉽사리 동백대교 교각 밑에 차를 세운다.



저만큼에서 한여름의 짙푸른 나무들이 우거져 있는 모습을 두 눈 안으로 들어온다장항 용당산의 용당진사(龍堂津祠)가 자리했던 곳이란다.


차에서 내려 용당진사의 전경이 가장 잘 보인다는 동백대교의 인도를 따라 성큼 위로 올라간다연이어 질주하는 차량들의 바퀴소리가 두 귀에 가득 차오른다.


동백대교(冬柏大橋)는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에서 전북 군산시 해망동으로 이어지는 국도 제4호선과 국도 제77호선의 다리이다.


2008년 9월 9일에 착공하여 10여년 만인 2018년 12월 27일에 개통되었다.


다리 길이는 1,930m이고 연결도로까지 합한 총 연장은 3.185km이다하구둑으로 우회할 때 14km였던 거리가 이제는 3km로 줄어들어 걸리는 시간 또한 30분에서 불과 5분 정도로 단축되었다고 한다놀라운 일이다.


그뿐만 아니라 하루 평균 3만여 대의 통행차량이 예상되며 연간 물류비용에 250억 절감효과를 가져온단다.


총 공사비 2245억 원이 투입되었으며폭 20m, 왕복 4차로로 인도까지 설치되어 있어 도보로도 왕복할 수 있다.


안전 통행을 위해 CCTV 등 24시간 모니터링 체제 구축은 물론 습윤염수제설장비 등 자동화 안전시설도 갖추고 있어 안심하고 걸음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과연 동백대교 위에 오르니 시선은 용당진사를 눈앞에 둔 채로 자꾸만 멀리 향한다서해로 나가는 두 눈이 수평선으로 내달린다.


그런 와중에 시선을 잠시 잡는 것은 장항제련소의 굴뚝어린 시절부터 저 굴뚝을 바라보며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것만으로도 얼마나 가슴 설레이게 하였던가새삼 기억이 새롭다.


여전히 매우 크고 웅장한 모습으로 서해로 향한 시선을 가로막는다.


바로 저 건너는 군산시조금 더 달리면 새만금으로 곧바로 이어진다.


해 뜰 무렵이나 해질 무렵이면 동쪽의 일출서쪽의 일몰로부터 장엄한 태양의 모습에 황홀경에 도취할 수 있다 한다그러나 지금은 그 시각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시선을 거두고 보니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장항동부교회가 한 눈에 들어오고그 곁으로 울울창창한 숲속에 묻혀있는 용당진사의 용당산(龍堂山)이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낸다.

 


용당진사(龍堂津祠)는 현재 충남 서천군 장항읍장항 읍사무소에서 동쪽으로 600m 정도 가면 주민들 체육공원으로 이용되고 있는 산에 위치해 있다.


해발 28.5m에 불과하지만 해변에 위치한 까닭에 오르는 길은 자연 가팔라질 수밖에 없다.


동백대교의 인도에서 내려와 천천히 용당산으로 향한다.


이곳에 올라서면 좌우로 장항 시가지는 물론이고 금강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좋은 위치란다.


그러나 가파른 계단을 힘주어 오르고 보니 앞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우거진 활엽수의 너른 잎 사이로 언뜻언뜻 동백대교만이 질주하는 소리로 보일 뿐 크게 자라난 둘레의 나무로 인하여 전망을 기대할 수조차 없다.


이 산은 용당산이라는 명칭에서 짐작해 낼 수 있듯이 용왕신에게 용왕제를 지내던 산이라고는 하지만 숲으로 둘러싸인 용당산을 서해용왕마저도 잘 찾아올지 자못 의심스러워진다.


워낙 우거지고 초록 짙은 나무그늘로 인하여 용왕굿을 열었던 자리가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어두컴컴하기만 하다.



뿐만 아니라 많은 체육시설이 설치되어 있는 체육공원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의 발자취를 찾아보기조차 힘들고음습하기 이릴 데 없다.

 

신증둥국여지승람에 의하면 1530년에 용당진사는 본군 남쪽 24리 지점에 있다 한다고려 때에는 웅진 명소로 용왕제를 지냈고웅진에서 향과 축문을 내렸는데 지금은 본 읍에서 치제(致祭)한다.


용당진사는 고려 때부터 용왕제를 지냈음을 알 수 있다그러나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죽막동에 백제 제사 유적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고려 이전에도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을 것으로 추정이 되고 있단다.


조선시대에는 기우소로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기도 하다또한 서천군에서는 비가 오지 않으면 제1차는 사직단에서, 2차는 이 용당단에서, 3차는 장항읍 장암리 두꺼비 바위에서, 4차는 봉림산에서 기우제를 지내오고 있다 한다.


기우제 방법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대개 관에서 주관하는 것은 유교적인 것과 무속적인 것이 습합되어 행해진 것으로 여겨진다.


아무튼 이 용당진사는 1929년 장항을 매립하기 이전 제련소 전망산과 함께 금강항포구를 연결하는 곳으로 금강을 지나가는 선박들에 대한 정보를 얻기에 유리했던 곳일 뿐만 아니라 선박사신무역선 등의 무사고를 기원했던 제사터임은 분명하다는 역사학자들의 주장도 있다 한다.


현재의 용당산은 체육공원으로 변해있다.


각종 체육시설을 설치하기 전 일제 시대에 신사가 위치해 있었으므로 그로 인해 유적이 모두 파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 아파하며 내려오는데 문득 갓을 올려 쓴 커다란 비석 하나가 보인다.



<舒川郡繁榮祈願 一鵬 詩碑(서천군번영기원 일붕 시비)>이다. ‘仰祈三寶舒川域 無盡繁榮大曙光 代代忠賢千古出 家家富貴萬年昌 三藏法師 一鵬 徐京保 韵서천 지역의 세 가지 보물같이 기원하나니 서광이 비치어 번영을 이루고대대로 오랫동안 빛날 충현이 나타나기를그리고 집집마다 부귀영화를 누리라고 기원한다는 내용이다.

 

용당체육공원을 빠져나와 용당산을 에워싸고 있는 선박회사 연수중공업유한회사에 든다회사의 너른 마당에서 용당산을 바라다보니 과연 하나의 섬으로 이루어진 듯 용당산 전체가 확연하게 나타난다.


나무숲으로 가로막힌 용당정(龍堂亭)이 나무 사이에 신음하듯 끼어 있다그러나 용당산의 전체를 아울러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퍽 다행스럽다쉽게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박수환(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님으로부터 전해들은 이곡(李穀. 1298~1351)의 칠언율시(七言律詩한 편을 떠올린다이곡은 고려 후기의 학자요 문인으로 백이정(白頤正정몽주·우탁(禹倬)과 함께 경학(經學)의 대가로 일컬어지고 있지 아니한가.

 


龍堂南對長岩曲(용당남대장암곡용당에서 남으로 마주보면 장암포구

上有荒祠蔭喬木(상유황사음교목그 위에는 교목 그늘 아래로 황량한 사당

東南舟航皆乞靈(동남주항개걸령동남으로 향하는 배들 신령에게 비나니

歌舞紛紛供酒肉(가무분분공주육노래와 춤 분분하고 술과 고기 듬뿍뿍

年來風雨顔爲災(년래풍우안위재몇 해 전부터 꽤나 심한 풍우의 재해

人不誠耶神不福(성야신불복사람이 불성실해 신령이 복은 안 주는지

我縱閑遊心悄悄(아종한유심초초내가 한가로이 노닐지만 마음에 걱정되어

千里煙波空滿目(천리연파공만목천리에 내 낀 파도 괜스레 눈에 가득하네

 

박수환 님은 이 시의 제목이 <過酉州龍堂長岩二祠(과유주용당장암이사용당과 장암 두 사당을 지나며)>이거니와 용당은 용당진이며장암은 장암진성(長巖鎭城)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 두 곳에 모두 사당이 세워져 있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한다.



장암은 조선시대의 장암진성이 있었던 현재의 장항읍 장암리 일대를 가리키고 있거니와 두 곳은 본래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형국이었으나 1929년 일본인 미야자키[宮崎]가 금강변의 갈대밭을 개간하기 위해 용당산과 전후망산을 연결하는 제방을 쌓고 매립하게 되면서 현재의 장항이 만들어졌으며장항제련소 굴뚝산 전망산은 일제강점기 측량지도를 보면 제곶(祭串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표기되었다는 사실도 박수환 님은 자료를 통해 소상하게 알려주었다.

 

용당산으로부터 조금조금 물러나면서 어느 곳을 찾아보아도 고장을 지켜왔던 옛 조상들의 역사와 문화가 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동백대교의 개통에 따라 금강과 연계한 용당진사 재현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용당진의 용왕굿이 장항의 여러 축제와 함께 장차 관광사업의 일환으로 발전되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문득 어디선가 용왕굿이라도 하는 것일까장구소리와 꽹과리 소리가 모둠으로 들려오면서 금강의 물결이 무무(巫舞)로 출렁이고 있다.

 

*위 글의 일부는 지역정보 포털(http://www.oneclick.or.kr)에서 인용활용하였음을 밝힌다.

 

 

용당진(龍堂津용왕굿

                                     구재기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 한 자리에 머물러 있고

만남과 헤어짐이 하루에도 수없이 이루어지는

용당진 포구

동이에 물을 담고

과일을 넣고

신을 벗고가장자리에 올라간다동이 탄다

정월 열나흘 달빛이 밧줄을 타고

용당진에 내릴 때를 기다려

쌀 메 어물 채소 삼실과 술 등으로 차려진 젯상에서

향이 피어오른다 향줄기가 똑바르게 솟아오른다

달빛을 받은 향불이 축원처럼 간절하고

선왕기船王旗처럼 만선滿船을 알리듯

선주船主들의 머리를 창호지로 묶어 상투처럼 세우고

물동이를 타고 올라가 일 년을 공수로 주는

무당할미

생사의 만남과 헤어짐을 빌고

굿청의 용선龍船에 돈을 넣고 한 번씩 흔들고

용선에 광목필을 연결해서 하나 되어 흔들고

몸을 흔들어 뱃노래를 부른다

한지에 곱게 싼 이밥 뭉텅이

포구를 오르내리며물밥으로

수중고혼들을잡귀들까지도 배불리 먹이자

한 자리에 머물던 바닷바람이

용당산 마루에 떡하니굽힘없이 버티어 앉아

정월 열나흘 달빛을 꿀꺽삼켜대길 거듭하다가

끝내 용당진 포구에 질펀하게 게워놓는다

 

삼실삼의 섬유질을 풀어서 꼰 실.

동이탄다용왕굿을 할 때는 대개 동이에 물을 담고 과일을 넣은 다음 신을 벗고 그 가장자리에 올라간다이를 동이탄다고 하는데 물동이는 용궁을 상징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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