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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기획탐방】임벽당 김씨(林碧堂 金氏)를 찾아서(下)...시인 구재기와 함께하는 '舒川 山河(서천산하) 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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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 임벽당 김씨(林碧堂 金氏)를 찾아서(下) - 충남 서천군 비인면 남당리


어지러운 시대에서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곧은 마음의 길을 바로 보면서 숱하게 겪을 수밖에 없는 온갖 질곡 속을 헤치며 살아가기가 얼마나 고난스럽겠는가?


인류 역사를 바꿔놓은 인류의 성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지만 역사의 흐름에서는 여전히 난세를 부르고, 고난의 역사를 펼쳐놓은 파렴치한 치정(治政)의 역사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작은 개울을 건너자 곧바로 이어지는 반듯한 길, 그 끝머리에 청절사가 초여름의 햇살 아래 찬연한 모습으로 서 있다. 둘레가 환하다. 청절사(忠節祠) 위로 펼쳐진 하늘도 한결 맑아져 있다. 그러나 이마로 흐르는 땀방울은 어쩔 수 없다. 땀의 흘러내림을 손수건으로 달래고 있는데 안내판이 기다리고 있다. 



충청남도문화재 자료 제 399호(2008년 4월 10일 지정). 연산군 때 연산군의 폭정을 극간하다가 교살당한 좌의정 성준에 연좌되어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으로 석방되어 이곳에 은거했던 첨지중추부사 유기창(俞起昌)과 예조판서를 지낸 유여림(俞汝霖)과 선조때 좌의정으로 난을 저리하여 광국일등공신에 오른 유홍(俞泓)과 인조 때 배청파의 거목으로서 병자호란 때 척화파에서 대의에 살던 죄승지 유황(兪榥)과 인조 때 예학에 정통했던 유계(兪棨)를 모신 사당으로서, 1720년 창건되었다가 훼절 후 1922년 복설된 청절사는 사당, 내삼문, 외삼문, 수직사 등이 일곽으로 남아 있고, 1920년대 사후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어 도지정 문화재 자료로 보존·관리되고 있다.



시적비(事蹟碑)에는 오현(五賢)의 일생을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어 잠시 발걸음을 잡는다. 오현의 충절한 삶이 절로 고개를 숙이게 한다. 무릇 성현(聖賢)이란 ‘성인과 현인’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성인(聖人)은 덕과 지혜가 뛰어나고 사리에 정통하여 모든 사람이 길이 우러러 받들고 모든 사람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을 일컬음이요, 현인(賢人)이란 어질고 지혜롭기가 성인에 견줄 만큼 뛰어난 사람이니 이 같은 오현 앞에서 절로 고개가 숙여짐은 어쩔 수 없다.


어지러운 시대에서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곧은 마음의 길을 바로 보면서 숱하게 겪을 수밖에 없는 온갖 질곡 속을 헤치며 살아가기가 얼마나 고난스럽겠는가? 인류 역사를 바꿔놓은 성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지만 역사의 흐름에서는 여전히 난세를 부르고, 고난의 역사를 펼쳐놓은 파렴치한 치정(治政)의 역사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 사이 성현은 새롭게 탄생하고 새롭게 탄생한 성현들 앞에서 여전히 또 다른 참삶의 길을 모색하면서 인간은 그것을 새로운 역사처럼 되풀이하여 기록해놓는다.



문득 이런 생각에 빠져 들면서 오늘날 국내외 모든 어려운 상황이나 국면이 어떠한 역사의 기록으로 남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기에 이르자 고개가 절로 좌우로 흔들리기를 거듭한다.


마침내 청절사 앞마당에 이른다. 깨끗이 쓸어놓은 듯 정결함이 청절의 기품을 느끼게 한다. 더욱 여름의 햇살이 맑고 고와서 한 점의 그늘조차도 투명하게 보인다. 살짝 곁을 바라보니 멀리에서 바라보았던 고목이 커다란 느티나무인 줄 알았던 밤나무라는 걸 확인하고 나니 새삼 새롭게 느껴진다.


무성할 대로 무성하게 자라난 밤나무가 많은 가지를 늘어뜨린 채로 짙은 그늘을 드리우면서 가지가지마다 꽃술을 조금씩 떨어뜨리고 있다. 흡사 거대한 꽃나무 한 그루가 의연하게 서 있는 모습이다. 밤나무의 짙은 그늘 아래에서 촌로 한 분이 먼 산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 삶을 먼 산의 초록에 얹혀 깊은 생각을 하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 그 모습 또한 하도 근엄하고 고고하여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차마 한 마디 말씀을 건네기조차 저어해진다.



촌로의 시선을 따르다 보니 멀리 임벽당의 은행나무에서 멈추어진다. 임벽당 내외가 중국여행을 기념해 심었다는 은행나무는 본래 세 그루였으나 두 그루만이 현존해 있다. 매년 이곳에서 정월 대보름이면 ‘나무제’가 행해지는데 마을에서 볼 때 가지가 길게 늘어진 앞쪽의 은행나무가 암나무요 뒤편의 것이 숫나무라 한다.


암나무는 수많은 세월동안 갖은 난리를 겪으며 중간에 불에 타버리고 없어진 공간을 인조로 된 껍질로 덧입혀 보존하고 있다. 옛날에는 은행나무라는 것이 그다지 흔한 수종이 아니었기 때문에 후손들을 위하여 귀히 심었다고도 전한다. 특히 은행은 예로부터 제사상에도 오르는 귀한 음식으로 분류되기도 하였다하니, 후손을 위한 조상의 마음이 은행나무에 깃들어 있는 듯이 보인다.


조상들은 예부터 나무를 심을 때 정자나무는 9그루를 심고 은행나무는 3그루를 심어왔다고 전해온다. 정자나무는 흔히 느티나무를 일컫고 있거니와 ‘구괴삼행(九槐三杏)’ 이라는 말도 있거니와, 곧 아홉 그루의 느티나무와 세 그루의 은행나무를 심었으려니, 임벽당 내외 또한 그러하였으리라.


특히 은행나무 서 있는 곳 앞으로는 ‘연당배미’라 부르는 연못이 있었다는데 당시 ‘임벽당’이라 부르던 정자와 다리에 쓰던 돌기둥은 그 일부가 청절사로 옮겨져 염립문을 떠받치고 주고 있다 전한다.


청절사 앞으로 선뜻 다가섰음에도 청절사의 삼문은 굳게 잠겨 있다. 밖에서 담장 너머로 굽어보고 있는데 지나는 아주머니 한 분이 연락처를 알려준다. 그리고 잠시 후에 기계유씨(杞溪兪氏) 유여주(兪汝舟)와 임벽당 사이의 15대손인 유성식(兪盛植) 씨가 나타난다.



이마에 땀방울이 흘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조상을 찾는다는 낯선 손님을 맞으려 급히 달려온 듯하다. 반갑게 맞아주면서, 그리고 친절하게 오현(五賢)은 물론이요 임벽당에 대하여 자세히 안내를 해준다. 


평소 제향 때 제물만 들어오던 중문 안으로 드니 뒤편 언덕 위에 세워져 있는 비석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유기창(兪起昌) ․ 유여림(兪汝霖) ․ 유홍(兪泓) ․ 유황(兪榥) ․ 유계(兪棨)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모두 단(壇)임을 말하고 있는 표석이다. 


그리고 맨 처음의 비석에 새겨진 ‘後孫鎭戊慕贒捐義碑(후손진무모현연의비)’이라는 글이 보인다. 즉 후손이 오현의 너그럽고 높은 덕행을 흠모하는 뜻으로 의비(義碑)를 진설하여 바친다는 내용이다. 삼가 고개를 숙인다.


청절사 안에 들어 내부를 살펴본 다음 오현의 위패 앞에 고개를 다시 숙여 예를 다한다. 그리고 조용히 물러난다. 너른 마당에는 여전히 밝고 맑은 여름햇살이 무수히 쏟아져 내리고, 우람한 모습으로 가지를 좌우 앞뒤로 늘어뜨린 밤나무는 짙은 그늘을 아래로 쏟아 내려놓고 있다.


아직도 삶의 길 위에서 살아온 길을 다시 살피실 일이 남아있는지 촌로는 여전히 밤나무 그늘을 양 어깨 위로 모으면서 깊은 생각에 잠겨 계시다. 그 분위기가 너무 깊어 차마 깨뜨려질까 조심조심 청절사를 빠져 나온다.


유성식(兪盛植) 씨의 안내로 임벽당 내외의 묘소를 찾는다. 가파른 산길이다. 여름이어서인지 묘로 올라가는 길가는 이미 잡초로 덮여있다. 그러나 가파르고 우거진 한여름의 잡초길을 쉽게 이겨낼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수고스럽게도 많은 잡초들은 후손들의 손길에 의하여 잘 다스려져 있어 임벽당의 묘소 앞에 쉽게 이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가파른 언덕산길에는 사태져 무너지지 않도록 두터운 갈포로 깔아놓고 있어 오르는 데에도 전혀 미끄럽지 않다.



조상에 대한 후손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런 후손들이어서인지 임벽당의 묘소 앞에는 본래 세워진 비석 옆으로 또다시 새로이 비문이 세워져 있다.


<配林碧堂義城金氏祔左 配茂朱金氏祔右之墓 仙醉處士杞溪兪公汝舟(배임벽당의성김씨부좌 배무주김씨부우지묘 선취처사기계유공여주)>라 새겨져 있다. 다시 예를 더하고 산을 천천히 내려온다.


恨別逾三歲(한별유삼세) 이별이 원망스럽지만 이미 삼년이 지났는데

衣裘獨禦冬(의구독어동) 가죽옷으로 홀로 추위를 막을 수 있으랴

秋風吹短鬢(추풍취단빈) 가을바람은 짧은 귀밑털에 불어오고 

寒鏡入衰容(한경입쇠용) 차가운 거울은 시든 얼굴을 비추네.

旅夢風塵際(여몽풍진제) 먼지바람 속에 객지를 떠돌고 있고

離愁關塞重(이수관새중) 이별의 아픔은 관애(關隘)로 거듭 막혀버렸네

徘徊思遠近(배회사원근) 이리저리 헤매며 멀리 있는 이를 생각하니 

流淚滿房櫳(유루만방롱) 눈물이 흘러 방안 가득 넘쳐나네.  

[贈別(증별: 이별한 임에게 줌)] 전문


이 시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을 읊은 오언율시이다. 솜옷도 없이 가죽 옷으로 추위를 견디는 임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절절이 새겨져 있어 아픔을 더하게 한다. 객지의 먼지바람 속에서 방황하며 살아가는 임에의 마음이 그대로 한 여인의 슬픔으로 나타나 있다.


멀리 있는 임을 그리워하며 홀로 거닐다가 홀로 눈물 흘리는 아낙네의 마음에는 슬픈 눈물이 가득하다거니와 남편을 그리는 여인의 마음이 얼마나 절절한가를 잘 보여준다.


임벽당 묘소로부터 내려와 산녘 건너 다랭이논 기슭의 바위를 찾는다. ‘杞溪兪氏阡(기계유씨 천)’이라고 쓰여 있다. 그 옛날 기계유씨들이 쉬곤 하였다는 너럭바위이다. 건너편 산기슭으로는 박 씨 할머니의 제당이 보이고 그 위로는 유 씨 집안의 애마(愛馬)가 묻혀있다는 말무덤도 훤히 건너 보인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너럭바위에 앉아 이마로 흐르는 땀방울을 씻어낸다.



청절사(淸節祠)에서

                      구재기

고개를 숙인다

마냥 잇대어 내리는

햇살의 발자국을 굽어보며

빛이 되는 삶이 어떻게 오는가

를, 생각는다 무엇인가 

바로 보는 지혜로움처럼

밤꽃 향기가 무리로 쏟아지는 

청절사 앞마당

한창인 여름이 가다듬고 있다 

저만큼의 먼 곳에서 

마주하고 있는 은행나무 두 그루 

푸르러온 반 천년으로 

하늘을 연하여 우러르고 있다

이제는 그 동안의 어둡고 느리고 

무거운 근기(根器)에서 깨어날 수 있을까

바람 한 줄기로 

한 시대의 깨닫게 되는 순간

아픔과 괴로움에 시달리다가

비로소 벗어나고 있는 듯

좀처럼 얻기 어려운 즐거움으로

청절사 현판이 반겨 맞는다

어디선가 알게 모르게 

오현금 가락이 조금 조금씩

연하여 들려오고 있다


*오현금(五絃琴): 다섯줄로 된 옛날 거문고의 하나로 중국 순(舜) 임금이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여기서는 청절사 오현(五賢)을 상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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