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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기획탐방】아, 「바라춤」의 시인 신석초...시인 구재기와 함께하는 '舒川 山河(서천산하)' 2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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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 아, 「바라춤」의 시인 신석초 - 충남 서천군 화양면 활동리


한눈에 들어오는 마을은 어느 한 곳 바람 한 점 없이 너무나 고요하고 한없이 편안하게 보인다.


이곳에서는 단 한 줌의 추위도 허락하지 않는지 겨울이라 해도 햇살만을 고스란히 내려놓아 다사로움과 맑음과 밝음을 그대로 품고 있다. 회관 앞으로는 튤립나무 한 그루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잎을 다 떨어뜨린 알몸이래도 자못 위엄스럽다. 홀로 서서 든든히 마을을 지키고 있다.


추운 겨울이 아니라면 어느 누구라도 슬그머니 밖으로 나와 잔잔한 미소와 수줍은 목소리로 마을의 이야기라도 들려줄 듯도 하다. 그 속에 선생의 고고한 모습이 엿보인다.



2020년 1월 18일 토요일 오후, 겨울답지 않게 포근한 날씨의 틈을 빚어 가볍게 산애재蒜艾齋를 나선다.


문헌서원文獻書院 앞을 지나 곧바로 충절로에 이르고, 광암삼거리로 지칭된 ‘장승배기’에서 국도 29호선인 장선로를 불과 150여 미터 따른다. 그리고 곧 왼쪽으로 활동리를 알리는 이정표를 만난다.


활산로로 방향을 튼다. 천천히 걸음하다 보니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맑고 밝은 양지마을 활동리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 마을은 지난날 서천군 한산면 숭문동崇文洞이라 불리웠다 한다.


지금은 화양면 활동리 17번지, 이곳에서 신석초 선생은 1909년 6월 4일(음력 4월 17일) 아버지 신긍우申肯雨, 어머니 강긍선姜肯善의 2남 중, 천석꾼 집안의 장남으로 유복하게 태어난다.


조선시대의 문신이며 시인이었던 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의 7대손이다.



선생이 태어난 활동리는 속칭 ‘은골’이다. 즉 ‘隱골’로 ‘숨어있는 동네’란 의미이다. 이 ‘숨은 마을’이 ‘숨은洞’에서 음운변화를 하여 ‘숭문동’으로 불리웠다. 이곳을 선생은 “가위 산수가 모여 있는 곳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옛날부터 풍수風水들이 많은 발을 멈추고, 이중환李重煥은 그의 저서 『택리지擇里志』에서 가히 살 만한 곳이라 칭찬하였다. 계절을 따라 이채로운 풍치와 생활이 펼쳐진다.


봄 가을과 겨울에는 나는 곧잘 강변으로 해안으로 겨우 사냥을 하러 다녔고, 혹은 깊숙이 보령 청양 산중으로 노루 사냥도 다녔다. 또 진강에는 낚시를 드리워 고기를 낚을 만하다.


<중략> 이 바다와 강과 산 사이에는 넓은 평야가 가로놓여 있어, 이때쯤 무성하게 자라난 갈밭 같은 볏대가 우거진 논들로 황혼을 지고 돌아오는 농부들의 모습도 한결 시원하다. 어염이 풍부하며 서민들의 생활에 알맞은 곳이다”라고 선생은 「나의 고향」에서 말한다.


한눈에 들어오는 마을은 어느 한 곳 바람 한 점 없이 너무나 고요하고 한없이 편안하게 보인다. 이곳에서는 단 한 줌의 추위도 허락하지 않는지 겨울이라 해도 햇살만을 고스란히 내려놓아 다사로움과 맑음과 밝음을 그대로 품고 있다. 조심조심 마을 안에 들어 회관 앞에 이른다.



회관 앞으로는 튤립나무 한 그루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잎을 다 떨어뜨린 알몸이래도 자못 위엄스럽다. 홀로 서서 든든히 마을을 지키고 있다. 추운 겨울이 아니라면 어느 누구라도 슬그머니 밖으로 나와 잔잔한 미소와 수줍은 목소리로 마을의 이야기라도 들려줄 듯도 하다.


그 속에 선생의 고고한 모습이 엿보인다. 그러나 겨울은 고요에 젖어있고 다만 마을 사람들은 모두 평안한 마음으로 방안에 머물고 있는 듯하다.


이미 선생의 생가지를 몇 번 찾은 적이 있어서 쉽게 생가지 앞에 이른다. 전에는 고추밭이었고, 이제는 복숭아 몇 그루가 전지된 채로 심어진 과수원으로 변하여 선생의 생가지임을 알려주는 표석을 끌어안고 있다.


신석초 시인(1909~1975) 생가터는 이 표석 뒤쪽 약 500m(대숲 묘소 아래) 지점이다. 시인의 생가는 안마당이 100평 정도이고 전체가 500평이나 되는 꽤 넓은 집이었다. 안채가 들어서고 대문 양쪽에 사랑채와 문간방이 있고 좌우로는 헛간과 하인방이 있는 □자 형태의 한옥이었다.  사랑채에는 누각형 마루가 있어 시회(詩會)가 열리기도 했으며 사랑채 마당 끝에는 연못과 탱자울타리가 있었다. 2000년 5월 5일. 서림문학동인회


이 표석은 다름 아닌 이곳 서천군의 <서림문학동인>들이 마음을 모아 세운 것이라 해서 더욱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그렇구나. 한학漢學에서 시작하여 시전詩傳과 당시唐詩와 노장老莊을 만나고, 서양시를 만나 발레리에 취하고, 향가와 고려가요와 시조를 통하여 민족을 만나왔던 평생의 선비시인이요 지성인인 석초 선생은 이곳 서천군의 후배문인들로부터 마음에 그려지고 우러러 따르는 문인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을 인격을 엿볼 수 있는 일화를 알아본다.


굶기를 밥 먹듯이 하던 시절, 석초는 밖에서 들려오는 떠들썩하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아직 동이 트려면 먼 시간이었다. 어둠이 남아 있어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누구인가도 알아볼 수 없는 시각이었다.


사랑방에서 나와 어둠 속을 향하여  “왜 이리 소란스러우냐?”고 소리쳤다. 곳간에 도둑이 들었는데 미처 달아나지 못하고 탱자나무 울타리 앞에 쭈그려 앉아있다고 하였다.


석초는 어둠 사이로 탱자나무 울타리 앞에 쭈그려 앉아 있는 사람이 어렴풋이 보였다. 어디서 많이 본 뒷모습 같았다.


곧 몸을 돌리며 어서 대문을 열어주라 외쳤다. 누군가 알고 싶지 않았다. 뜻밖의 말에 머슴이 엉거주춤 대문을 열어주자 도둑은 쏜살같이 빠져나갔다. 석초는 다시 몸을 돌려 머슴들에게 도둑이 누구인가 알았느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답하자 “참 다행이다”라며 혼잣말을 하고는 다시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도둑이 누구인가 두 눈을 마주쳤더라면 서로 간 평생을 외면하고 살 수밖에 없다고 석초는 생각했던 것이다.



‘신석초’라 하면 「바라춤」의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왜 시인 ‘신석초’라 하지 않고, 「바라춤」의 시인이라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만큼 「바라춤」의 위상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석초에게서 「바라춤」만큼 심혈을 기울인 작품도 없다. 개작改作에 개작이라는 산고産苦 끝에 십여 년의 세월을 거쳐 완성한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개작改作’을 거듭하는 시작 태도로부터 그의 시정신을 엿볼 수 있다. 서사시敍事詩가 아닌 순수시로서의 ‘장시長詩’를 보인 첫 시인이다.


또한 ‘발레리’를 떠올리게 하는 시적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서구적 방법에서 발단되어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전회轉回·Kehre’하여 온 동양적이요 선비적인 ‘지성知性과 사상思想’의 대가급大家級 시인이기도 하다.


생가지에서 벗어나 천천히 선생의 무덤으로 향한다. 그리고 무덤 앞에 이르러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선생의 생가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동쪽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石艸高靈申公應植之墓室人晋州姜氏附左>. 묘비 옆에는 선생의 시 「천지天池」가 시비詩碑로 세워져 있다. 시비는 마치 백두산 천지의 모습인 듯 정수리가 움푹 패여 하늘에서 내린 빗물을 고이 받아들고 있다.


밝아오는/ 너의 높은 정수리로부터/ 일월은 천지개벽을 하고/ 천도화를 피우고/ 태초에 하나의 무리의 조상을 낳았나니/ - 신석초의 <천지天池> 전문


선생의 묘소에서 생가지를 다시 굽어본다.



숭문동崇文洞의 모습을 찬찬히 둘러본다. 선생이 한산보통학교 3학년에 입학하여 5학년까지 다니다가 검정고시로 경성제일고보(현 경기고)에 들어가기까지 10여 리가 되는 한산을 오가며 수없이 넘나들었던 마을 뒷산 어성산은 푸른 하늘 아래 하늘을 닮은 푸른 소나무들이 무리지어 우뚝 서 있다.


그렇게 시작한 선생의 발걸음은 조금씩 트이는 세상에 대한 눈높이를 점점 키워갔으며, 그러는 동안 일생을 통하여 잊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두 사람을 만난다.


1935년에 이르러 선생은 애써 직職을 구할 생각도 하지 않고 흥뚱흥뚱 세월을 보내면서 우연히 월간 잡지 『신조선新朝鮮』 편집을 맡게 되었고, 그때 그곳에서 정다산鄭茶山 선생의 문집 『여유당전서與猶堂 全書』를 발간하고 있었는데, 그 발간의 뒤에서 전력하고 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 선생은 내수동에 있는 위당 정인보의 집을 가끔 찾아가면서 어떠한 법열을 느끼기까지 한다.


그리고 드나들다가 육사陸史 이원록李源祿을 만났으니 그는 선생으로 하여금 또 한 사람의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된다.


“그의 얼굴은 둥근 편이었다. 두렷한 달덩이 같은 얼굴이란 표현은 그와 같은 용모를 말함이리라. 얼굴빛이 그리 희지는 않았지만 유리처럼 맑고 깨끗하고 구김새가 없었다. 한 점 티끌이 없는 얼굴이었다. 그 위에 상냥하고 관대하고 친밀감을 주는 눈과 조용한 말씨, 제일류의 신사적인 품격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그가 생래生來로 타고난 선조로 한 그의 가계나 또는 그가 중국에 오래 유학하여 그곳의 문물에서 체득해온 결과라는 것도 또한 의심할 바 없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우리의 교우는 시작되었던 것”이라고. 육사를 말한다.



선생의 묘소에서 천천히 내려오면서 마을의 품속에 다시 든다. 포근하다. 안온하다. 세상은 어머니 품속인 양 끊임없이 내리는 한 겨울의 햇살을 길러 젖먹이의 진자리 마른자리를 마련하여 질펀하게 깔아놓은 듯한 마을이다.


이곳에서 아주 오래오래 머물러 고양이털처럼 보드라운 바람결에 선생의 시심詩心을 본받고 싶어진다. 그러다 보니 문득 선생의 「바라춤」 한 구절이 떠오른다.


묻히리란다. 청산에 묻히리란다./ 청산이 변할 리 없어라.// 나는 절로 질 꽃이어라./ 지새어 듣는 법고 소리! / 이제야 난 굳게 살리라./ 날 이끌 흰 백합의 손도, 바람도, / 아무것도 내 몸을 꺾을 리 없어라. - 신석초의 「바라춤 - 서사」 중에서


뒤돌아보기를 수없이 되풀이로 머뭇거리며 활동리 숭문동崇文洞을 아쉬운 듯 빠져나온다. 그리고 다시 장승배기를 거쳐 천천히 한산으로 향한다.


장승배기에서 다시 충절로를 따르다 보면 그 옛날 돼지 한 마리가 청상과부와 도사로 하여금 부부의 연으로 맺게 해줌으로써 이름을 얻은 <돼지고개>를 넘어서게 된다. 바로 이 고갯길 곁에 선생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꽃잎 절구絶句」시비가 세워져 있다. 


꽃잎이여 그대/ 다토아 피어/ 비바람에 뒤설레며/ 가는 가냘픈 살갗이여.// 그대 눈길의/ 머언 여로(旅路)에/ 하늘과 구름/ 혼자 그리워/ 붉어져 가노니// 저문 산 길가에 져/ 뒤둥글지라도/ 마냥 붉게 타다 가는/ 환한 목숨이여.―신석초의 「꽃잎 절구絶句」 전문



그렇다.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은 얼마나 단명短命한 것인가, 그토록 유한적有限的 존재인 아름다운 꽃이지만, ‘하늘과 구름’이라는 이상을 그림으로써 더욱 붉어지는 꽃은 한층 더 아름다워진다.


아름다움의 절정에 이른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꽃을 피움으로써 최후의 순간까지 아름다움을 지켜내는 꽃, 그것은 바로 참된 삶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꽃잎 절구絶句」의 모습은 선생이 다녔던 한산초등학교에 들어 더욱 극명하게 나타나 있음을 본다.


선생이 한산보통학교 5학년까지 2년 동안 다녔던 지금의 한산초등학교에는 무려 수령 870여 년이나 되는 높이 12m, 둘레 13m인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천군의 보호수로 당당히 서 있다.


먼 세상에 대한 꿈을 키우고 있는 아이인 선생에게 그늘을 드리워줬을 이 느티나무는 여전히 그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다. 문득 먼 곳에서 바라哱囉의 맞부딪는 소리가 들려온다.


선생이 머물며 공부하였다는 봉서사鳳棲寺가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까닭이리라.



튤립나무 한 그루

- 신석초 선생 생가마을에서

                              구재기


바람이 분다

흰 눈이 섞여 내린다

간간히 손등에 떨어지면서

섬뜩하니 옹크려든다

온몸이 으스스 떨려온다

지금 튤립나무는

스스로의 아픔을 견디고 있다

이미 겨울은 깊어지고

깊어져서 튤립나무는 시방 알몸이다

알몸이어서 떨어뜨릴 잎 하나 없다


많은 세월을 홀로 살아왔다

때로는 숨 넘어갈 때

숱한 번뇌와 고뇌에 휩싸여왔다

짧은 호흡지간을 위하여

수십 년을 살아 숨 쉬면서

빗방울과 바람과 구름과 햇살

하나하나 온몸에 새겨넣었다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간다면

끝은 어디로 가든지

편안하기는 할 터이지만

깨닫지 않고는 모두 모르는 것 뿐

알음알음 알아온 것으로

다 안 것처럼 넘어가 버리는 것은

곧 삶의 문제,

고요한 생각을 다스리며

튤립나무는 모든 마음을 내려놓는다

포근한 햇살과 함께

바라哱囉의 맞부딪는 소리가

온 누리 가득 넘쳐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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