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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기획탐방】득음(得音)길, 대바람 솔바람 소리...시인 구재기와 함께하는 '舒川山河(서천산하)' 2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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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득음(得音)길, 대바람 솔바람 소리 - 충남 서천군 종천면 도만리 이동백의 소리길을 따라

시나대 숲은 한적하리만치 고요하기 이를 데 없다.

이따금 작은 바람이 스쳐 지날 때마다 추임새가 질펀하게 내려깔릴 듯하다. 지난 가을 내내 떨어진 낙엽이 푹신 쌓여있어 발걸음이 한결 부드럽다.

너름새가 분명하다. 강하고 맑은 계면조의 소리가 확실하다. 소리의 고저가 분명하고 명확히 구분하여 들려준다.

평평하게 시작하여 중간을 높이다가 끝을 다소 낮추어 끊어버린다. 판소리 중고제의 기교가 시나대숲에 살아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소리가 시나대숲을 지나는 바람 소리인가 했더니 그것이 아니요, 저만큼의 소나무 숲에서 들려오는 소리인가가 했더니 그 소리는 더욱 아니다.

소나무와 왕대숲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시나대숲에서 갈무리되다가 절로 우려내지듯 들린다.


2020년 2월 20일 목요일 오후.

아직 벽면에 매달린 달력 위에는 겨울이 머물고 있지만 지상 위에는 완연한 봄맛이다.

입춘을 지나 이미 우수를 맞기는 맞았지만 대동강물도 풀린다는 경칩을 보름가량이나 남긴 터라 포근한 봄 날씨를 보인다는 것은 그다지 탐탁치만은 않다.

하기사 ‘우수(雨水)’라는 말이 ‘눈이 녹아서 비나 물이 된다’는, 곧 날씨가 풀린다는 뜻이거니와 한편으로는 포근한 날씨 또한 하늘의 뜻이라 이르니 괜스레 설레어진다.

대백제로인 국도 4호선을 따라 서천IC 앞을 거침없이 달리다 보니 문득 ‘도만리’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어 대백제로 1265번길로 들어선다.

서부저수지(=흥림저수지)를 뚫고 흐르는 판교천을 건너뛰니 앞으로 탁 트인 평화로운 마을, 종천면 도만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햇살이란 햇살을 고스란히 마을 한곳에 모아놓은 듯 밝고 화창하기 이를 데 없다.

고요와 함께 평화가 고여 있는 듯하다. 희리산 계곡의 봄눈 녹인 차가운 물이 소리 없이 맑음을 더하여 주듯 너른 들녘을 향하여 마을은 그렇게 펼쳐 있다.

스스로 미끄러져 마을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다. 마을회관 앞을 지나니 마을 한가운데에 너른 주자창이 있다. 주차된 차량 몇 대가 한가롭고 여유롭다.

곁으로는 도만리 작목반의 농수산물간이집하장 건물이 보이고, 그 곁에 정자 하나 다소곳이 서있다. 안내판이 보인다. <이동백 소리길>, ‘솔바람길’이란다.

‘이 길은 이동백 선생이 소리를 얻기 위하여 2년 여 동안을 오르내리던 길입니다. 이동백 선생은 집에서 용구(龍口:得音터)까지 1.5km를 걸으면서 음을 구상하고 용구에서 독공하여 조선 후기 5대 명창 중의 한 분이 되셨습니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면서 이 동백 선생의 숨결을 느껴보고 선생이 이룩한 업적을 기리고자 만들었습니다.’

안내문을 읽는 동안 문장 하나하나에서 무언(無言)의 자부심을 느낀다. 이 마을에 들 때의 첫 인상이 그렇게 환치되어 나타나는 것이 분명하다. 이 분이 바로 ‘조선후기 5대 명창’ 중의 한 분으로 서천분이시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1867(고종4~1950). 본명은 이종기(李鍾琦), 아명은 동백(東伯). 태어나던 해 아버지가 죽었기 때문에 편모슬하에서 어렵게 살았다 한다.

8~13살 때 서당에 들어가 한문을 공부하였으나 소리에 뜻이 있어 13세 때에는 김정근(金正根)의 문하에 들어가 판소리를 공부하고, 다시 순창 출신의 명창 김세종(金世宗)에게 5년간 공부하였으며, 또한 이날치에게서도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세 전후에 도만리 흐리산 용구(龍口)에서 2년간 독공(獨工)하였고 다시 전주 이곡사(里谷寺)에 들어가 3년간 공부하였다.

절에서 나오자 창원부사의 부름을 받고 「새타령」을 불러 이름을 떨쳤다.

38세 이후 경상남도 창원에서 사는 9년 동안 활동 무대로 삼으면서 명창으로 차츰 알려지게 되었다.

48세 때 서울로 올라와 고종의 총애를 받아 고종으로부터 정3품 통정대부의 벼슬을 제수받기도 하였다.

김창환(金昌煥), 송만갑(宋萬甲)과 함께 원각사(圓覺寺)에서 창극을 공연하였다.

원각사가 1909년 해산 된 뒤 송만갑의 협률사(協律社)에 참여하여 전국을 순회하던 중 1910년 한일합병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다시 1933년 송만갑(宋萬甲), 정정령(丁貞烈) 등과 함께 소선성악연구회를 조직하여 판소리 교육에 힘쓰는 한편 창극 정립에도 노력했다.

수년 후 연흥사(延興社) 장안사(長安社), 광무대(光武臺) 등에서 활동하다가 1939년 공식적으로 은퇴하였으나, 열화와 같은 요청으로 두 달 동안이나 전국과 만주, 연해주 일대까지 순회공연을 계속하였다.

그 후 가끔 무대에 섰으며 경기도 평택에서 일생을 마쳤다. 

이동백은 김세종에게 짜임새 있게 판소리를 배웠고, 성량이 풍부하고 풍채가 당당하여 거인적인 명창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고운 음색과 다른 사람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고음으로 이름을 날렸다.

<심청가> <적벽가>를 특히 잘 하였고, <새타령>은 이날치 이후 최고라는 평을 들었다. 특히 <새타령과 <흥보가> 중 ‘제비 후리러나가는 대목“ 그리고<심청가> 중 ’범피중류(泛彼中流)‘ 대목은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심청가> <적벽가> <춘향가> 등의 음반을 남겼다.

제자로는 강장원(姜章沅)을 두었으나 그가 별다른 제자를 두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동백의 소리는 끝내 전승되지 못하고 있다.


이동백의 일생을 그려보면서 좁다란 마을길로 들어선다. 불과 몇 십m 언덕진 길로 오르자 다소곳한 안내석이 나온다. 이동백의 생가지다. ‘이동백 선생 생가지.

이곳은 조선 고종 때 명창인 이동백(1867~1950) 선생이 태어난 곳이며 당시 판소리의 대표적 인물인 선생은 춘향가 적벽가에 뛰어났으며 새타령에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고종 황제의 어전에서 판소리를 불러 통정대부의 벼슬에 오르기도 하였다’라고 오석에 국한문으로 새겨 있다.

그러나 생가지를 말하고 있을 뿐 생가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다.

낯선 모습의 슬라브 벽돌집만이 빈집으로 남아 있다. 앞으로 이동백 기념관이 새로 지어질 예정이라고 곁에서 들려준다. 생가지에서 빠져나와 다시 솔바람길 안내를 따르기로 한다. ‘이동백 소리길’이다. 


주차장에서 용구(龍口)로 오르는 희리산 길은 온통 대나무 숲이다. 대나무 숲 어디선가 판소리 한 마당이 들려오는 것 같다.

이 대나무 숲을 걸어 오르면서 이동백이 흘려버린 판소리 한 마당이 대나무 숲에 내려앉아 마디 굵은 댓 뿌리로 스며들었는지 모른다.

울창한 대숲길은 온몸으로 한기가 배어 나올 듯 산뜻한 기운을 북돋아준다. 

대숲길을 벗어나 고갯마루에 이른다. 이정표가 나타난다. 새로운 시나대 숲이 시작된다.

<판소리이야기1-뜻>에 대한 설명문이 나온다. ‘판소리는 소리꾼이 북쟁이(고수)의 장단에 맞추어 소리(창), 말(아니리), 몸짓(발림)으로 펼치는 종합예술이다. 말은 이야기 구조를 까진 문학 영역, 소리는 장단과 가락을 가진 음악 영역, 소리꾼의 몸짓이나 북쟁이의 추임새는 연극 영역에 속한다. 2003년 유네스코 판소리 다섯마당을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온 세계에 우수한 예술문화로 널리 알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시나대 숲은 한적하리만치 고요하기 이를 데 없다. 이따금 작은 바람이 스쳐 지날 때마다 추임새가 질펀하게 내려깔릴 듯하다.

지난 가을 내내 떨어진 낙엽이 푹신 쌓여있어 발걸음이 한결 부드럽다. 너름새가 분명하다. 강하고 맑은 계면조의 소리가 확실하다.

소리의 고저가 분명하고 명확히 구분하여 들려준다. 평평하게 시작하여 중간을 높이다가 끝을 다소 낮추어 끊어버린다. 판소리 중고제의 기교가 시나대숲에 살아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소리가 시나대숲을 지나는 바람 소리인가 했더니 그것이 아니요, 저만큼의 소나무 숲에서 들려오는 소리인가가 했더니 그 소리는 더욱 아니다.

소나무와 왕대숲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시나대숲에서 갈무리되다가 절로 우려내지듯 들린다.


대바람소리/ 들리더니/ 소소한 대바람소리/ 창을 흔들더니// 소설(小雪) 지낸 하늘을/ 눈 머금은 구름이 가고오는지/ 미닫이에 가끔/ 그늘이 진다./ 대바람 소리 들여오는 창가/ 국화 향기 흔들리는/ 좁은 서실(書室)을/ 무료히 거닐다/ 앉았다, 누웠다/ 잠들다 깨어 보면/ 그저 그런 날을// 눈에 들어오는/ 병풍의 ‘낙지론(樂志論)’을/ 읽어도 보고…… / 국화향 날리는 서실에서의 한거/ 그렇다/ 아무리 쪼들리고/ 웅숭거릴지언정/ ― ‘어찌 제왕의 문에 듦을 부러워하랴’ // 대바람 타고/ 들려오는/ 머언 거문고소리……  ― 신석정의 「대바람소리」 전문

시나대 숲길을 지나자 곧이어 소나무 숲길에 이른다. 소나무에서 슬금슬금 번지는 솔향기가 온 누리를 덮는다.

언제 보아도 푸른 잎이며 언제 맡아도 향기롭기만 한 소나무의 푸르름이며 그 향기는 산길을 걷는 아름다운 동행이 되어준다.

‘흙을 밀고 생겨난 죽순적 뜻을 그대로/무엇에도 개의챦고 호올로 푸르러/구름송이 스쳐가는 창궁(蒼穹)을 향하야/오로지 마음을 다하는 이 청렴의 대(유치환의 「대」중에서)’를 말할 수 있다면, ‘하늘에서 받은 본성을 지켜 땅 위에 홀로 겨울이나 여름에 푸르러 있는 것은 소나무와 잣나무뿐이거니와, 그들은 하늘에서 받은 본성을 그대로 보전하기 때문에 스스로 믿어 두려워하지 않는다’(장자.莊子)고 소나무를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이동백은 이 대숲과 솔숲을 하루도 몇 번 오르내리며 득음의 외길로 갈고닦았을 것이 아니겠는가. 이 길 위에서조차 움터 올라 점점 하늘을 향해 자라나면서 하루하루 푸르고 푸르러진 대나무와 소나무 또한 절정(絶頂)의 음향(音響)으로 쉼 없이 성장을 거듭하면서 대바람 소리며 솔바람 소리로 언제나 푸른 향기를 피워 올리고 있는 것은 자못 자명한 일이다. 

대바람소리와 솔바람소리를 귀에 익히며 발길을 옮긴다. 산길은 점점 가팔라진다. 더딘 걸음으로 옮겨간다. 조금씩 숨이 가빠지고, 걸음이 무거워진다.


지친 몸을 쉬어가라는 것일까? 이름 없는 정자 하나가 기다렸다는 듯이 반갑게 맞아준다.

<판소리 이야기2-갈래>가 두 눈에 들어온다. ‘판소리는 전라도 섬진강을 경계로 동쪽은 동편제, 서쪽은 서편제로 갈리며, 중고제는 충청·경기 지역의 소리를 말한다. 동편제는 동산 위에 달이 슬그머니 떠오르는 모습 같은 담백함을, 서편제는 봄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오르는 모습 같은 화려함을, 중고제는 선비들이 사랑방에서 조용히 글을 읽는 모습 같은 부드러움을 특징으로 한다’고 적혀있다. 

‘판소리’란 ‘여러 사람이 모인 장소’라는 뜻의 ‘판’과 ‘노래’를 뜻하는 ‘소리’가 합쳐진 말이다.

17세기 한국의 서남지방의 굿판에서 무당이 읊조리는 노래를 새롭게 표현함으로써 유래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 전기 문헌에 보이는 광대소학지희(廣大笑謔之戱)가 토대가 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바, 광대 집단과 관련이 있다는 측면에서 소리꾼과 청중의 적극적인 참여로 완성되는 독특한 특징을 가진다.

이후 판소리는 서민들 사이에서 구전으로 전해지다가 19세기 말경에 문학적 내용으로 더욱 세련됨으로써 도시 지식인들 사이에까지 많은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한다.


솔숲은 더욱더 가팔라지고 희리산의 7부 능선 정도에까지 이어진다. 또 하나의 정자가 세워져 있다. 그리고 그 옆으로 흘러내릴 듯한 언덕을 막아선 안내판이 보인다.

동백 이종기의 일생이 간략하게 적혀 있다. 이동백 사진 한 장, 한 폭 병풍 앞에는 난 화분이 놓여있고 정장차림의 무대복을 입은 채로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이 청간(淸澗)의 물소리를 닮아있다.


다시 솔숲을 오른다. 용구(龍口: 得音터)까지 거의 다 왔다 싶다. 과연 몇 발자국 떼어 올라간 뒤에 용구가 기다린다.

그러나 전혀 용구답지 않다. 앞부분은 이미 무너져 동굴로서의 깊이와 길이가 없다. 활엽수 한 그루가 동굴 입구를 가로막고 있다. 을씨년스럽기도 하다.

그 곁에서 <판소리 이야기3-아름다움>임을 말해준다.

삶에 담긴 내용과 배어있는 뜻을 가락에 얹어 음악으로 표현함이요, 한의 정서에만 머물지 아니하고 끊임없이 삭임(소화시킴)의 과정을 통해 차원 높은 예술로 승화시켰으며, 판소리의 바탕에 깔려있는 오묘하고도 융숭 깊은 멋과 여유로 한을 어루만졌을 뿐 아니라 소리꾼의 해석과 미적 표현의 오묘한 깊이, 멋드러진 가락으로 듣는 이들이 감동하고 공감하며 예술적인 멋을 성취한 것이 바로 판소리의 아름다움이란다. 


문득 바닥에 떨어져 있는 방향표식을 본다. <이동백 득음터>, 화살표의 방향을 따라 더 올라간다. 그러다가 앞을 탁 가로막고 있는 집채만한 바위, 그 밑으로 뚫려있는 동굴 하나, 바로 이곳이 이동백의 득음터인 용구가 아니겠는가?

소나무 뿌리가 거대한 바위를 끌안은 듯 천하의 몸부림이 동굴 속에서 흘러나온다.

온 산이 쿵쿵 울려온다.


솔바람 대바람소리
- 이동백의 소리길을 따라
                            구재기

한 백년은 살아온 것이다
아니 백년하고도
한 반 백 년은 더
너끈히 살아왔던 것이다
푸른 하늘 밑으로
빛을 모아 텅텅, 내려 쏟는
허공의 울림
오르는 길을 바로 알고
순간순간 발걸음을 모으면서
마침내 백 년을 이룬 것이다
백년하고도 반백년 넘어
하루 하루를 살아오듯
마음의 고요를 울려온 것이다
대바람 솔바람 사이를 뚫고
누구라도 꺾을 수 없는
물리칠 수 없는
신도 악마도
차마 근접할 수 없는
소릿길, 솔바람 대바람 소리
절대의 길 위에서
쓸 만한 가치로
스스로를 이겨내면서
소리의 구도자가 된 것이다
지혜로이 용구龍口에  들어
하늘을 울리는
푸른 절정의 바람 소리
백년, 아니 반백년은 더 지나
예까지 토해내는
하늘빛 솔바람 대바람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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