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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신수용 쓴소리】제21대국회, 한광옥의 참 용기를 새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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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슬 퍼런 전두환 정권 때 이런 일이 있었다. 정권을 비판하거나, 별의별 올가미를 씌워 탄압했던 시절이다. 보안사와 민정당만 보이고, 야당과 검찰, 경찰, 국정원은 있으나 마나였다.


이때 혜성처럼 나타난 야당 정치인이 있었다. 제11대 초선인 민주한국당 한광옥 의원이었다. 그는 전두환 집권 2년차인 1982년 10월 7일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정치부 기자 입문 바로 직전이라 아직도 생생하다.


그후 국회를 출입하면서, 청와대를 출입하는 기자로서 한광옥의원 또는 대통령실장을 마주했으나, 표정이나 모습은 늘 그대로다. 어찌보면 느긋한 중년 신사랄까. 아니면 세상의 불의를 보고 호통치는 애국지사랄까. 그것도 아니면  약자를 끌어안고 권력자에게는  호통치며 글을  쓰는 노(老) 기자랄까.


어쨋든  이런 분이 이 시대에 있다는 것은 늘 행운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패거리 정치에 때묻은 우리 사회에, 불의를 불의인지 알면서  침묵하는 이 나라에  이 분이 있다는게 기분이 좋았다. 법보다 돈, 주먹이 가까운 그때나 지금이나 역사를 함께 쓰는 이 시대이기에 말이다. 



40년 전에 있었던 일이라 구체적인 내용을 찾기 위해 국회회의록을 뒤졌다. 그랬더니 , ‘아 이런 정치인도 있었구나. 그것도 야당 초선의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때 처음 ‘광주사태(5·18민주화운동)'가 등장한다. 



그는 이날 첫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다. 그는 5.18 광주 문제해결과 김대중 선생 석방 등 민주화 7개 항을 요구했다. 광주사태라는 단어가 국회라는 정치공간에서 첫 언급된 것이다. 당시는 전두환 세력이 언론을 통제해서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때문에 '광주사태'와 '김대중', '김영삼',‘김종필’,‘선생님’등등의 단어는 금기시 됐다.


한광옥은 이 당시 정권의 아킬레스를 겨냥했다. 그는 '우리 국토의 한 부분에 아직도 막힌 데가 있다. 또 뚫어야 될 곳이 있다. 서먹서먹해서 이해시켜야 될 곳도 있다. 다름 아닌 광주사태란 문제를 지적한다'라며 5·18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과 피해자 보상에 대한 문제를 처음제기 했다.


또 '이 사태는 우리가 원하든 아니든 민족사 비극으로 기록될 것이다. (중략) 5·17이 혁명이 아닌 일종의 과도기의 비상 사태였다 해도 전두환정권이 들어서는 시점에서는 이를 금기시 할 것이 아니다. 정상화된 국회에서 그 경위와 결과처리에 대한 보고는 당연하다’며 진상규명을 요청했다.


그는 '아직도 광주사태로 구속 중인 민주인사들을 무조건 석방· 사면해야한다. 어떤 이유든 정치보복이라는 인상을 씻어내야 국민화합과 정치발전이 가능하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석방과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


그가 요구한 민주화 7개 항은 ‘정치보복 중단하라’, ‘김대중 선생을 석방하라’,‘ 광주 사태(민주화운동)의 진상을 조사하라’,‘지방 자치제 시행하라’,‘언론자유 보장하라’,‘대통령 직선제를 실시하라’,‘ 전두환 대통령은 민정당 총재직을 사퇴하라’등이다.


한광옥의 발언은 총칼로, 삼청교육대의 폭압으로, 고문과 최루탄으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와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줬다. 신군부 세력이 가장 금기시했던 5·18 광주 문제가 최초로 국민에게 공개적으로 거론되었던 역사적인 발언이었다.


흥미로운 일은 집권당인 민정당의원 누구도 항의하는 사람이 없었다. 국회의장도 발언에 끼어들어 제제하지 않았다. 여당의원석도 누구하나 고성이나 삿대질 등 소란 없이 끝까지 경청했다. 지난해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라는 말을 듣지 않게 해달라’고 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지난해 나전 원내대표의 이말에 여당 의원들이 야유와 고성, 집단퇴장모습과는 180도 다른 분위기였다.


한광옥의 이 발언은 민정당지도부 조차 공감했을 정도다. 그러니 전두환 세력의 보복과 탄압은 다행히 없었다. 그의 7가지 요구는 4.13호헌조치라는 징검다리를 거처 6.29선언이란 백기투항으로 이어졌다, 훗날 5·18 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과 함께 ‘광주사태’가 ‘폭동’이 아닌 ‘민주화운동’으로 평가됐다. 이어 5공 청문회와 전두환, 노태우신군부 세력이 사법의 심판을 받았다.


뿐만 아니다. 한광옥의 이 대정부발언은 지난 2011년 5월 25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됐다. 한국의 초선의 야당의원의 전두환 정권에게 쓰디쓴 고언여서만이 아니다. 역사에서 자칫 기록되거나 묻힐 수 있거나, 설움과 억울한 피해자들이 생길수도 있을 법한 일을 해내서다 .한국 정치사에, 그리고 역사에 전례 없는 일이다.


오는 30일, 우리의 제21대 국회가 새로 시작된다. 충청출신 여야 3인방인 박병석 국회의장과 충남공주출신 김상희 국회부의장, 또 충남공주출신인 정진석 국회부의장이 사실상 의장단을 꾸몄다. 헌정사의 새로운 기록이며, 여성 첫 국회부의장이라는 기쁨도 안았다.


촉망되는 차기, 차차기... 그런 정치인도 많다. 그들의 신선함이 기대된다. 또한 초선만도 전체의석의 절반이 넘을 만큼 물갈이가 대폭됐다. 세계인들이 코로나19속에 치러진 우리의 4.15총선을 주목한 가운데 치러졌다. 물론 여야의 팽팽한 균형이 아니라 여당의 압도적 승리 속에 국회가 새 모습으로 문은 연다.


그런데도 제21대 국회 개원을 축하하면서, 한편엔 우려를 씻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생각하건 데 그런 정치인이 나올까하는 것이다. 독재가 아닌 민주화시대에 그런 정치문화가 나올 까하는 의문 때문이다. 300명 면면을 검토. 분석해보니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인물이 많지 않다.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국회의원의 책무를 다한 한광옥같은 이가 흔치 않아서다. 전두환에 대해 ‘5.18은 폭동이 아닌 민주화운동이다. 민주화의 상징인 김대중, 김영삼 선생을 석방· 사면하라. 언론자유 보장하라.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뽑자’고 외칠 정치인이 몇명이나 될지 알 수 없어서다.


제 21대 국회의원 당선자 중에 해공 신익희, 임영신 전 민주당의원과 김두환 전 자유당의원처럼 이승만 독재에 사퇴하라는 요구할 인물이 몇이나 될까. 같은 당이면서, 양정직, 예춘호 전 공화당 의원처럼 박정희 면전에서 3선 개헌을 반대할 의원이 지금으로선 찾을 수 없다.


권력을 다 쥔 집권당인 민주당도, 유일한 무기인 ‘말(言)’을 가진 통합당등 야당도 책무를 다할지 걱정스럽다. 21개월여 남은 대선 때문에, 이어 지방선거 때문에 불의와 의혹에 침묵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의원스스로 문재인정부에 대해서나 소속 당에 대해 쓴소리할 인물이 없어보여서다.


지난 정권들, 특히 박근혜정권이 퇴락한 것은 내부 쓴 소리가 없어서다. 대통령들 자신이 쓴소릴 들으려는 마음가짐 없었다. 대통령스스로가 ‘내가 누군데, 감히’하는 식이었다. 그러니 좋은 말, 잠시 기분 좋은 말만하는 사람들만 챙겼다. 


시골장터 상인이  ‘장사가 거지같다’는 쓴 소리에 무례하다고 공격할게 아니다. 정치하는 사람은 즉시 무엇을 도와줘야 거지같은 꼴에서 벗어날지 고민해야한다. 국민의 대변인이자 권익을 옹호할 금배지들이라면, 밤낮없이 국민을 만나야한다. 그들의 팍팍한 삶을 첩방해야하고, 길을 터줘야 한다.


마지막까지 억대 연봉을 슬그머니 처리한 20대 국회는 생각하지도 말자. 최악이었으니까. 박근혜 국정농단으로 탄핵, 35년형까지 받게 한 일 외에는 생각나는게 오직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의 경쟁뿐이었다. 특권은 다 누리고 연일 자신들 밥그릇싸움인 선거법 고치는 데 싸움을 세월만 보냈다.


싹수없는 정치가 독재국가도 아닌 삼권분립국가에서 한쪽에 쏠려있다. 적은 힘을 배려하는 게 아니라 더 짓밟고 뭉개왔다. 그리고 역대 없는 각종의혹, 심지어 윤미향 전 정의연 대표의 실수라며 하는 거짓말들...이젠 정치가 답할 차례다. 21대 국회는 이제 한광옥처럼 총칼 보복도 두려워하지 않는 참 용기를 되찾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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