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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최민호 명언명상 칼럼】목수는 나무가 굽어 있다고 먹줄을 굽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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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 나는 법률을 어길 수 없다.’고 하면서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


그의 제자 플라톤은 이런 말을 남겼다.


‘재판관은 젊어서는 안 된다. 판사는 자기의 이성의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악의 본질을 오랫동안 관찰함으로써 그 악을 배워 알아야 한다.’


우리는 사람이 아닌 법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 태어나 살고 있음을 진심으로 행운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 없는 세상이나, 사람이 법을 대신해 나의 운명을 좌우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음을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사회를 ‘법치주의’ 사회라고 말한다.


세상에 법은 너무도 많다. 종류도 많고 내용도 많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나라가 부패해질수록 법률은 많아진다’고 했지만, 악법도 무법보다는 나을 것이다.

법에도 계급이 있다.


계급이 높은 법을 상위법이라 하고, 낮은 법을 하위법이라고 한다.


헌법, 법률, 명령등이라는 계급이 이런 것이지만, 법의 계급은 매우 엄격해서 하위법은 상위법을 절대 거역해서 적용되지 못하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법은 만들어지는 것도 계급에 따라 질서가 있다.


명령은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이 만든다. 법률은 국회가 만든다. 최상위 법인 헌법은 국민이 만든다.


그래서 헌법은 국민투표를 통해서만 만들 수도, 고칠 수도 있다.


헌법이 선언한 것은 국민이 명령한 것이고, 이 나라의 지배자가 곧 국민임을 선언한 것이다.


그래서 헌법은 그 국가의 정체성이고 가치체계인 것이다.


누구도 이에 위배되어서는 안 된다.


헌법은 그런 최상위 법이지만 포괄적이고 원칙적인 정신만을 제정한다. 구체적인 것은 해석이 필요하고, 그 해석은 신중하고 철학적 기반이 공고한 바탕위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엄성을 가진다.


헌법을 최종적으로 해석하는 곳이 헌법재판소다.


그리고 헌법재판관은 사법시험을 거친 법조인중의 최고의 법조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재판관들은 우리나라 국민들의 생사여탈, 심지어 국회와 정당이나 대통령의 운명마저 결정짓는 마치 신과 같은 막강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 법정에 들어서면 이 재판관들보다 더 위대한 존재는 없을 것이다.


이 재판관들이 기준으로 삼는 것은 헌법과 법률, 그리고 스스로의 양심이외에는 없다. 그들의 법 해석여부, 그들이 지니고 있는 양심의 순결성에 따라 모든 국민은 그들의 판단에 오로지 복종하여야 한다.


위대함과 동시에 지극히 위험한 제도속의 존재들인 것이다.


우리나라 재판관들이 판결의 근거로 삼고 있는 헌법과 법률의 근본은 무엇이겠는가?


헌법학자들은 우리 헌법에 관통하고 있는 본질적인 원칙을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로 해석하고 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유인으로 태어났고, 국민으로서 주권을 가지고 있으며,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려면 오로지 법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원칙이다. 그것이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원칙인 것이다.


어떤 정치인도 이 원칙을 벗어날 수는 없다.


대통령의 취임선서의 첫마디가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로 시작하지 않는가? 그러니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것은 헌법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흔히, 진보와 보수를 말하지만, 이런 이념의 차이도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라는 선을 넘을 수는 없다. 이 원칙을 뛰어넘는 생각이나 정치행위는 위헌적 활동으로 금지되는 것이다.


헌법적 틀 안에서의 진보와 보수는 견제와 균형을 통해 국민의 인권과 권리를 상생시키는 좋은 파트너라고 생각한다.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이념으로 정치를 한다면, 국민 중 다른 이념을 가진 쪽은 그만큼 소외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다양한 논란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것이 바로 자유민주주의의 장점인 것이다.


루스벨트는 ‘법 위에 아무도 없고 법 아래 아무도 없다.’고 했다.


법치주의의 생명은 공평인 것이다. 누구도 법 앞에서 평등해야 하고, 계층이나, 이념, 종교등에 따라 적용이 달라서는 위헌인 것이다.


만일 특정이념이나 계층, 정파, 종교에 편향된 검사나 판사가 있다면 그 사람은 헌법을 제정한 국민에게 죄를 범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극형(極刑)을 언도하기 전의 판사는 자기 목이 매달려지는 것 같은 심정이어야 한다’

탈무드의 말이다.


예전에 일본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검사나 판사를 그만 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변호사를 개업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검사나 판사를 그만두고 개인적인 사정이 있지 않는 한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는 분이 있을까?


대법관을 지낸 분도 마찬가지다. 고위직에 계셨던 분일수록 변호사 수임료도 고가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최고재판소, 즉 우리나라 대법관을 지낸 분이 변호사를 개업하는 분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단히 예외적이라는 것이다.


일반 법관이나 검사도, 퇴직 후 모두가 변호사를 개업하는 것도 아니었다. 변호사개업을 하면 수입이 엄청날 텐데 왜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최고재판소 판사들은 법의 최종판결자이다. 즉, 법의 최고 권위자이고, 법이 무엇인가를 최종적으로 해석한 분들이다. 그렇다면 최고재판소의 대법관이 변호를 한다면 그 변론은 당연히 승소해야 마땅한 것이다.


만일 패소한다면, 자신의 대법관 시절의 판결도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자기부정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스스로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래서 개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의외의 답변에 그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하는지 물었다. 대답이 담담했다. 연금이 있지 않느냐고. 간혹 저술활동도 하고.그 분들의 생활은 부유하지 않았다. 일반 국민들과 비슷한 작은 아파트에서 사는 분이 많았다.


그런데 국민들의 그 분들에 대한 존경심은 하늘을 찌르는 것이었다. 그 분들은 법관으로서의 권위와 자존심을 무엇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가 가슴에 와 닿는 울림이 대단히 컸다.


우리나라 법조계에 ‘전관예우’라는 말이 있는데, 변호사가 누구냐에 따라 판결이 다를 수 있다는 말 아니겠는가까?


직전의 판검사 출신이나 고명한 변호사를 쓰면 ‘전관예우’라는 관행에 따라 판결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이 말은 진실로 있을 수 없는 말이다.


‘유전무죄’요, ‘무전유죄’라는 비아냥거리는 단어도 일맥상통하는 말로 진심으로 믿고 싶지 않다. 위대한 판사와 검사들을 모독하는 너무도 위험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단어 자체가 법치주의와는 상반되는 반문명, 반윤리, 반인도적인 위헌적인 단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세상이 혼탁해도 한 나라의 두 기둥만은 건전하게 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과 사법의 두 기둥이다.


교육은 정의와 진리가 무엇인지 가르치는 곳이다. 사법은 그것을 확인해 주는 곳이다. 이 두 기둥은 진실로 건강해야 한다. 어느 한 쪽이라도 무너져서는 안 된다. 무너지면 세상은 혼탁해진다.


정의와 진리가 무너진 나라에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


법치주의를 생각할 때, 판사만큼 고독한 직업이 어디 있겠는가 생각한다.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신의 판결로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우고, 한 개인의 운명을 바로 잡아준다면 이보다 더 가치있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검사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노고가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 노고가 이루어내는 가치란 얼마나 숭고한 것인가?


돈이나 승진이나 무엇으로 바꿀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진심으로 우리의 판사와 검사들만은 법과 양심만에 의존하는 고독하고 위대한 애국자가 되길 바라고 있다.

목수는 나무가 굽어 있다고 먹줄을 굽히지 않듯이, 판사와 검사는 사람을 벌주는 것이 아니고 죄를 벌준다는 철칙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법은 나라의 삶의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이라고 생각한다.


나라가 어지러울 때마다, 국민들의 가치관이 방황할 때마다 되새기며 지켜야 할 근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법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법 때문에 망한다.’ 바이런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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