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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탐방】소설가 운당 구인환 선생 생가를 찾아서(下)...시인 구재기와 함께하는 '舒川山河' 50편


050. 소설가 운당 구인환 선생 생가를 찾아서(下)
- 충남 서천군 장항읍 옥산리(봉근리마을)

생가의 마당에는 유독 눈부시게 하는 꽃나무 한 그루 멋지게 자라나고 있다. 눈부시다 못해 화려하다. 제철을 맞은 동백이다. 동백은 겨울철 눈 속에서 피는 붉은 꽃으로 유명하다.

흔히 대나무·소나무·매화나무를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하지만, 다른 꽃이 모두 지고 난 겨울에 피는 동백꽃을 추운 겨울에도 정답게 만날 수 있는 친구에 빗대어 세한지우(歲寒之友)라 부르기도 한다. 주인을 애타게 기다리며 피어났던지 온몸을 붉게 물들인 채 오똑하니 서 있다.

같은 나무라 해도 그 화려함에 반했음일까. 곁의 단풍나무 한 그루가 미쳐 새싹을 피워내지 못한 채로 가뜩이나 물먹은 가지를 동백 곁으로 자꾸만 뻗어나갈 듯 서 있다. 이제 봄이 좀 더 깊어가면 물오른 단풍나무 가지 곳곳마다에서 앙증스럽고 예쁘기만 하게 불그스름한 새싹을 틔워 이 생가를 아름답게 지켜나갈 것이리라.

선생의 모습을 그려보며 생가의 마당에서 밖으로 시선을 돌리려니 현관문 쪽에서 구인환 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운당 구인환 선생 문학비>로부터 물러나 생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생가 둘레에는 당초문 문양의 단순한 S자 무늬로 장식된 낮으막한 철책으로 둘레가 싸여 있다. 밖에서 안으로 쉽게 들여다볼 수 있지만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없다. 하는 수없이 철책을 따라 돌아가니 집의 왼쪽으로 작은 철제문이 하나 있다. 잠금장치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그냥 밀고 들어가고 싶다.

그러나 밖에서도 내부가 잘 보이는데 굳이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자세히 들여다볼 뿐이다. 앞쪽으로나 왼쪽 둘레는 모두 철책으로 싸여 있다. 왼쪽으로는 철책 출입문이 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갈 수야 있겠다 싶기도 하다.

생가의 안 마당에는 지난해에 어지럽게 자라난 대로 뻗어난 각종 덩굴성 잡초와 망초를 비롯한 여러 잡초들이 서로 엉켜 앙상하기 이를 데 없다. 이것들이 모두 따뜻한 봄날의 햇살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뿌리로부터 다시 살아나 엉클어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보니 마음이 불안해진다.

철제 옆으로 우체통이 하나 쓸쓸히 서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미 우체통에는 갖가지 공과금 고지서로 꽉 차 있다. 넘쳐나서 곧 밖으로 흩날릴 듯하다. 오랫동안 생가는 그저 생가로 존재하고 있었던 탓이다.


밖에서 안으로 들여다보니 현관문은 반듯하다. 현관문 양 옆으로 테크로 깨끗하게 장식되어 있고 현관문 또한 소박하지만 깔끔하여 보기에도 좋다. 당장이라도 밖에서 안으로 소리 높여 부르면 밝고 맑은 웃음으로 현관문을 열고 나와 반가이 맞아줄 주인장의 모습을 볼 수 있겠다 싶다.

오척 단구의 선생이 장항농업중학교 시절 연식정구의 선수였더니 만큼 오늘처럼 봄 햇살 가득한 봄날이라면 말랑말랑한 공을 푸른 하늘 높이 팡팡 쳐올린 듯 시원스러운 흰 반바지 반팔 차림으로 현관문을 열어젖히고 나오실 듯하다. 그러나 지금 그 주인은 없고 다만 봄 햇살이 고스란히 모아지면서 빈 마당의 마른 잡초 위에 쌓이고 있다.

생가의 마당에는 유독 눈부시게 하는 꽃나무 한 그루 멋지게 자라나고 있다. 눈부시다 못해 화려하다. 제철을 맞은 동백이다. 동백은 겨울철 눈 속에서 피는 붉은 꽃으로 유명하다. 흔히 대나무·소나무·매화나무를 세한삼우(歲寒三友, 추운 겨울철의 세 친구)라 하지만, 다른 꽃이 모두 지고 난 겨울에 피는 동백꽃을 추운 겨울에도 정답게 만날 수 있는 친구에 빗대어 세한지우(歲寒之友)라 부르기도 한다.

주인을 애타게 기다리며 피어났던지 온몸을 붉게 물들인 채 오똑하니 서 있다. 같은 나무라 해도 그 화려함에 반했음일까. 곁의 단풍나무 한 그루가 미쳐 새싹을 피워내지 못한 채로 가뜩이나 물먹은 가지를 동백 곁으로 자꾸만 뻗어나갈 듯 서 있다.

이제 봄이 좀 더 깊어가 면 물오른 단풍나무 가지 곳곳마다에서 앙증스럽고 예쁘기만 하게 불그스름한 새싹을 틔워 이 생가를 아름답게 지켜나갈 것이리라. 선생의 모습을 그려보며 생가의 마당에서 밖으로 시선을 돌리려니 현관문 쪽에서 구인환 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의 몸은 오척 단구다. 하지만 그가 해나가는 일들은 수 백 척이나 된다. 우선 그를 소개하자면 무엇부터 소개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국어 교육학에서는 그를 교육학 학자로 칭하고 문단에서는 소설가와 평론가로서 받아들인다. 정리하면 그는 학자요 소설가요 비평가인 일인삼역을 하는 신기의 인물이다.

한 가지를 하기에도 어려운 일인데 그 모두 다 최고 수준으로 해결하고 군림해 나가고 있다. 그뿐 아니라 칠십을 넘겨버린 육신을 비웃기라도 할 듯한 치의 조율 없이 젊은 때의 일들을 그대로 소화해 나간다. 나이를 열 살 깎아 불러도 믿기지 못할 정도로 젊다. 학계에서는 석학 교수로, 문학계에서는 원로로 그를 추앙하지만 그에게는 아직도 펄펄 넘치는 청춘이 남아있다.

시인 강준용 씨의 한 마디를 SNS에서 옮겨본다. 더 이상 어찌 구인환 선생을 말할 수 있으리오? 천천히 생가를 빠져나오면서 언제쯤 잘 보존되어 뭇 문학인들이나 팬들의 발걸음에 부응하게 될지를 끊임없이 밀려오는 생각을 정리해본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을 생각으로 몰아가 보아도 방법론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방법은 너무 확실한데 그에 미치는 힘이 마음 있는 모든 분들의 뜻으로 모아질 때 가능하고, 또한 쉽게 이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생가 앞의 논[畓]이 구인한 선생 소유라는데 지금은 밭[田]으로 변해 있고, 그 밭에는 이름 모를 나무들이 심겨져 있으나 이 또한 마른 잡초에 뒤엉켜 있어 안타까움을 더해준다.

문학비평가요 전 중앙대학교 교수 이명재(李明宰)는 <작가 구인환은 으레 우리 생활 주변에서 자신이 보고 느낀 체험들을 소설적으로 다양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그는 현실적인 삶의 현장이나 여러 대상들을 제재로 삼되 역사적인 사실이나 실제의 삶과 마음의 여울들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하여 문학작품으로 빚어낸다>고 말한다.

또한 문학비평가요 전 국민대 명예교수 장백일(張佰逸)은 <구인환의 작품 세계는 한마디로 인간 생활의 저변을 통한 인간 존재의 해명과 상실한 낙원을 갈구하는 현대인의 고민을 그린 것이다. 간결한 문체, 고백체이면서도 3인칭의 주어와 주관적 서술어로 이미지의 전환에 의한 상황적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의 소설 미학이 구체화되어진다>고 말해놓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각각의 작품마다 그 높은 작품성을 말하고 있거니와 문학비평가 명지대 이용남 교수는 <「기벌포의 전설」은 여러 삶의 방식과 그 주변부터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 또한 모든 것이 어우러지는 삶의 마당이며, 궁극적으로 치유자로서의 자연, 그것을 아름다운 강물에 연결시키는 주인공 서 교수의 시각. 이것이 「기벌포의 전설」의 세계관이자 우리들의 삶의 일상을 끌어안은 방식이다. 그럼으로써 교수를 비롯한 그 일행들의 삶 역시 하나의 전설인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문학비평가 김양수(金良洙)는 <장편소설 「일어서는 산」은 일제 말기라는 그 암흑기를 거쳐 온 우리 민족의 수난사를 다시 한 번 보명해 보인 작품으로써 시골인 근본리를 중심으로 하고 경성을 무대로 벌어지는 민초들의 처절한 수난을 리얼하게 그리고 내일을 꿈꾸는 인고의 생활사를 투시한 대 로망이다.>


그리고 문학비평가이며 중앙대 교수인 전영태(全英泰)는 <우리가 「산정의 신화」에서 작가와 더불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중심’과 ‘상승’의 상징체계를 통한 현실 극복의 의지와 미래 지향성이다. 「산정의 신화」에서의 신화는 아득한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어렸을 때의 이야기다. 그 소중한 것들이 살아지고 있는 이때 그것을 다시 보듬고 사랑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특히 우리나라 문학비평문학의 태두이면서 전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회장이었던 백철(白鐵)은 <「동굴주변」은 이 어려운 시대의 저변 인생을 3인칭이면서도 주관적인 표현의 상황 설정의 기법으로 전개된 작품으로 그 시각과 기법으로 봐 또 하나의 신인이 나온 것같이 보인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렇게 구인환 선생은 수준 높은 작품을 이 세상에 펼쳐놓으시고 정작 모습은 보여주지 않고 있다. 선생이 스스로 대표작이라 말한 「숨쉬는 영정」을 살펴보기로 한하다.


그러니까 바로 나흘 전, 동생의 소식이 왔다고 적십자사에서 통지가 오던 날이었다. 그날도 낮에 산마루에 올라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송만 나가면 금세 소식이 올 줄 알았던 기대가 산산조각이 나는 듯하자, 그때 만나지 않은 것이 가슴에 사무쳐왔다. 벌을 받아야 돼, 받아도 싸지.

재규가 어머니를 모시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그때 혼자 남아 있었지만, 또 모를 일이다. 난 휴전선보다 더 두터운 장벽을 마음속에 쌓아놓고 있었다는 말인가.

재규야! 말 좀 해봐라. 어딘가에 있으면 대답을 좀 해보란 말이다. 몸이 오싹했다. 또 오한이 나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다가 더 견딜 수가 없어서 산을 내려왔다. 집이 가까워지자, 좀 어지럽다고 생각되었다. 발을 멈추고 몸을 가다듬었다.

“아빠……소식이 왔어요.”
누가 달려오면서 말했다.
“뭐, 소식이라니?”
제일 먼저 집에 오는 기숙이다.
“삼촌 소식이 왔어요, 삼촌요.”
“뭐? 재규가 살아 있다고? 그게 증말이야, 응?”
말을 마치면서 그 자리에 쓰러졌다. 동네 사람에게 업혀왔다. 얼마 뒤에 정신이 들었으나 그대로 눕고 말았다.
―단편소설 「숨쉬는 영정」  부분


이 작품 「숨쉬는 영정」의 주인공인 태규는 전쟁 와중에 동생을 잃었지만 생존 문제에 급급해 현실을 팽개치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뤄오던 끝에 방송국에서 기획한 이산가족 찾기 운동을 보고 나서야 궁여지책으로 가족 찾기에 골몰한다는 데 작품의 진정성이 있다.

동생의 안부는 궁금하겠지만 월남을 한 뒤에 가정을 꾸렸고 가솔들을 이끄는 가장이다 보니 번듯하게 경제를 일군 뒤에야 동생을 찾겠다는 결심을 했던 것인데, 동생과 조우했을 때 그는 이미 영정이 되어 있다.

작가가 이산가족 의 상봉을 목격하고 그 소재를 최대한 살려 작품으로 완성시켰다는 이 「숨쉬는 영정」은 개인의 아픈 상혼에 그치는 이야기가 아니라 차일피일 미루면서 단절되는 남북문제의 심각성을 상징하고 있다.

자기 혈연을 되찾아야 한다는 본능적인 사랑을 지각한다고 해서 몇 십 년 동안 다른 생활에서 살아온 형제가 열일을 젖혀두고 만남을 기약할 수 없듯이, 이리 민족이 갈구하는 바가 절실해도 현실적 거리라는 경제성을 쉽게 뛰어넘을 수 없다.

<중략> 다시 말해서 구인환의 작품이 표출하고 있는 심층적 의미는 현실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소시민의 진실이며, 숨은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 중에서 필연적으로 만나는 것은 죽음 또는 이별이다. 이때의 죽음과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하는 시작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윤회사상과 맥을 같이한다.

선생의 작품은 누구보다 전쟁과 관련된 소재들이 많은데 그 이유는 작가의 성장기가 전쟁 상황에 놓이기 때문일 것이며, 우리 민족이 아직도 전쟁의 상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데 작가의식이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박명애, 「숨은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 -그 상흔에 대하여」(단편소설집 『숨쉬는 영정』 해설 중에서)


생가로부터 물러 나와 방금 만났던 두 할머니 곁으로 다가선다. 두 할머니는 여전히 봄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생가를 둘러보고 있는 낯선 몸짓을 바라보고 계셨던 것이다. 구인환 선생의 묘소가 멀다는데?―, 하면서 말꼬리를 흐리자, “바로 저기유, 여기 길 있쥬? 쭉 가시다 보면 들께루 솔나무 몇 그루 서 있지유, 그곳으로 가시지 말구 반대편 언덕배기로 올라가면 바로 그곳에 있슈! 멀지 않어유” 친절한 안내의 말에 감사하면서도 농촌에서의 길 물음에는 ‘바로 저기’가 까마득한 거리인 걸 잘 알고 있는 터라 조금은 염려하면서도 두 분 할머니의 말씀에 따른다.

그러나 구인환 선생의 묘소를 쉽게 찾은 행운을 만난다. 안내의 길을 따르다 보니 들녘 쪽으로 몇 그루의 소나무가 서 있고, 반대쪽에 오르는 언덕길이 보인다. 길옆 공터에 주차해놓고 내리려다 애견과 산책하고 있는 한 동네분과 만난다. 언덕에 성큼 오르면서 따라 오란다.

얼마 되지 않은 길이지만 자칫 헤맬 수도 있는 장소에 구인환 선생의 무덤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럼에도 너무 쉽게 찾았음에 할머니와 동네분께 감사하다. 

가족묘원인 듯 부친의 묘비 <平海丘公秉基 요셉의 墓> 밑으로 많은 무덤이 묘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구인환 선생의 무덤 앞에는 묘비가 세워져 있지 않아 잘 알 수 없었지만, 친절한 안내로 쉽게 찾는다. 묘비 뒷면에는 구인환 선생을 비롯하여 5남 2녀의 다복한 일가족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맨 윗자리 맏이의 자리에 ‘文學博士 丘仁煥’이라는 이름 석 자가 보이고, 바로 그 밑에  ‘文學博士 丘昌煥’이라는 이름도 보인다. 필자는 무덤 앞에 서서 두 손을 모아 명복을 빌고는 공손히 허리를 굽혀 재배(再拜)를 올린다. 살아계실 때 만날 때마다 ‘아저씨!’라 부르면 반가이 맞아주시던 선생의 모습이 연하여 되살아 오른다.
 

동백 한 그루
- 운당 구인환 선생님을 기리며
                                       구재기

참으로 먼 길을 
추운 겨울과 함께 지나
이리도 피어있다 
홀로 붉게 타오르듯
차마 피어나 더욱 눈부시다 
엣 사람들은 송백(松柏)이 
마지막에 시든다는 것을 알았다지만*
세한지절(歲寒之節), 수분(受粉)을 도와줄 
벌 나비 한 마리 만날 수 없어
매운바람으로 향기를 뿌린다
불꽃보다 더 뜨거운 붉은 빛깔로
새를 불러들인다. 
동박새를 불러 들인다

비록 마른 밭은 
잡초의 해침을 받고 있지만
동백은 지금 잎 푸르고
붉은 꽃을 피워 향기로 기득하다
그렇다, 지금 
모든 하늘과 구름이 
멀리서 휘돌아 눈앞에 차오른다.
지상에 온 몸을 내려놓을 때
차마 흩뜨릴 수 없어
통째로 내려앉아 살포시  
드러나지 않게 가만히
그 빛깔 그 향기 져버리지 않는다 
하늘을 꿈꾸기보다는 
보다 나은 구름으로 그늘을 모아
포근히 뿌리를 내린 채로
지상을 보듬어 안고 있는 
동백 한 그루

* 子曰, 歲寒, 然後知松柏之後彫也(자왈: 세한, 연후지송백지후조야) 공자가 말했다. - 추운 계절이 되어야 송백이 마지막에 시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論語논어』 子罕篇(자한편)에서
* 동백꽃은 꽃말이 ‘그대를 누구보다 사랑합니다’, ‘진실한 사랑’, ‘겸손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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