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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탐방】365일, 서천 산하(舒川山河)...시인 구재기와 함께하는 '舒川山河' 5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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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 365일, 서천 산하(舒川山河)
- 구재기 시인과 함께 하는 [서천산하(舒川山河)] 연재 1주년을 맞아 

그렇다. 서천에 가산해 주어야 할 시간은 그리 길게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발걸음을 내딛을 곳은 수없이 펼쳐져 있다. 거기, 서천이라는 아름다운 산천을 한 걸음 한 걸음 걷노라면, 수없이 많은 인정의 꽃이 피어나고 있으며, 그 꽃의 열매가 손길마다에서 소리 없이 익어가고 있다.

천방산이 그러하고, 그곳으로부터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그러하다. 바로 서천의 정체성의 영원한 흐름이다. 상당 기간 동안 서천에서만이 일관되게 유지되는 고유한 실체로서 서천에 대한 주관적 경험을 함의(含意)하고 있다.

서천의 심오한 내부에서 일관된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과 다른 존재와의 관계에서 어떤 본질적인 특성을 지속적으로 공유하는 것, 이것이 바로 서천의 정체성이요, 서천군민의 본성임에 틀림없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 그러나 아무리 온누리를 두리번거려 보아도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멈출 줄을 모르고 C-19는 한층 더욱 기승을 부린다.

입조차 마스크로 틀어막고 비로 곁에 있는 지우(知友) 사이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로 근접하지 못하도록 거리를 두게 한다. 그 거리는 일상사를 무너뜨리면서 집 밖으로의 나들이까지 허락하지 않은 채 가택연금(軟禁)의 상황으로 가로막게 한다.

외부와의 접촉이나 외출은 심적으로 우선 꺼리게 해 놓으니, 어쩔 수 없이 집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발걸음에도 께름칙하게 만든다. ‘가택’이라는 일정한 장소 안에서 신체의 자유는 구속하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나 해야 할까. C-19는 정도가 지나치도록 무거운 심적 감금에 갇히게 한다. 답답한 마음의 연속이다.

더더구나 2020년 올해의 장마는 사상 유례 없이 길게 계속되어 C-19로 인한 짜증에 부채질을 해준다. 지루하기 이를 데 없다. 지난 8월 21일 기상청의 보도에 따르면 올해 장마는 제주도에서 6월 19일 정도부터 시작되고, 남부는 23일부터, 중부는 24일 정도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보통 한 달 정도 6월에 7월 사이가 장마철이라 한다.

그러나 올여름 장마철 기간은 중부와 제주에서, 그리고 남부에서 각각 54일, 49일, 38일을 기록하여 1973년 이후 가장 긴 장마를 이루었다 한다. 이 지루한 장마가 끝나는가 싶더니, 그런데 이것은 또 웬일인가. 연일 30℃를 오르내리는 무더위까지 계속되면서 괜스레 이 모든 게 탐탁하지 않기만 하여 역정이 절로 치솟게 한다.

언제쯤 이 덤불같이 어수선하고 엉클어진 시공 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 태풍이 또 오간다. 이제는 지루하다 못해 어떠한 대상도 존재하지 않는 허공을 향하여 치솟아 오르는 분노를 날리고 만다.


그러나 분노의 자리에도 가을은 어느 사이 와 있다. 아침저녁으로 마련된 서늘한 기운은 아침에 먼저 열어젖힌 창문 안으로 기어들어와 하루의 첫 출발을 산듯하게 닦아준다. 아, 이제 가을인가 보다. 여느 때보다 이른 시각에 창문을 닫게 하는 저녁 즈음에 이르면 가을은 풀벌레 울음소리를 노래로 바꾸어 창문을 두드리게 한다. 절로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시원해지기도 한다.

여름 내내 무더위와 장마에 지친 가슴을 열어 놓는다. 산애재(蒜艾齋) 울 밖에서 들려오는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가 정겹기만 하다. 가을은 풀벌레 울음소리조차 맑고 깨끗하게 닦아놓아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가을 기운에 스스로 미끄러져 가을의 품 안으로 들게 한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 그동안 시달림을 주고 있던 C-19는 그 성미가 고약스러워 뻗어가는 형세가 굳세기 이를 데 없거니와, 좀처럼 사라질 기미까지 보이지 아니한다.

창밖으로 서서히 몰려들고 있는 어둠 사이로 시나브로 다가오는 가을을 맞는다. 가을은 그렇게 어둠 속으로부터도 걸음을 멈추지 않고 있다. 앉고 있던 의자를 끌어 창문 앞으로 다가간다. 잠시 창밖의 어둠이 조금 물러나는 듯한다. 산애재(蒜艾齋)의 창문을 열어젖힌다.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선뜻 하루를 인내하며 잦아들었던 기운이 어느 사이 되살아 오르기 시작한다. 시야(視野)는 조금씩 거리를 더하면서 멀리로 질주하듯 나아간다. 희미하게 지난날들이 다가온다. 시야에 다 들어오지 않을 만큼 좌우로 탁 트인 드넓은 광경들이 펼쳐진다. 많은 사람과 함께 발걸음하며 누렸던 이야기들이 연속적으로 펼쳐지는 광경 속에서 스물스물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이제 안갯속으로 나마 발걸음을 해볼까, 안개를 조금씩 벗겨내며 숨 차올랐던 순간들을 더듬어 보기로 할까. 천방산(千房山)이 먼저 울적하니 다가온다.


참 빠른 것이 시간이었다. 지나고 보면 기다리던 시간들이 저만큼 앞서가고 있다는 것이 곧잘 체감해졌다

젊은 시절, 아니 어린 시절 그리도 지루하고 따분했던 시간들은 어디로 어떻게 사라지고 말았는지 그 꼬리조차 보이지 않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조차 잠깐 보였다가는 이내 사라지곤 했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버리자 새로운 시간들이 줄지어 앞장섰다.

그동안 “시계는 열한시 오십구분/ 일분이 지나면 날이 바뀐다... 날이 바뀌어 본들 별일은 없지만/ 바뀌는 날에 기대를 걸어본다// 기대를 걸어본들 별일은 없지만/ 언제나 속으며 믿어본다.// 믿어본들 별일은 없지만/시계는 열한시 오십구분/ 일분이 지나면 새 날이 된다(박남수의 시 <시계는 열한시 오십구분>에서)”는 것을 깨달으며 산애재(蒜艾齋)의 대문을 들고나는 일에 꾸준히 계속하여 온 셈이었다.

그 결과 1919년 9월 5일(목) 제129호 『서해신문』의 지면에 [시인 구재기와 함께하는 舒川山河]라는 제하(題下)에  [천방루(千房樓)에 올라]가 그 첫 걸음으로 시작되었다. <서해신문>이라는 한정된 지면을 통하여 서천의 산하와 함께 호흡하며 발걸음 하기 시작한 지 벌써 1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가버린 것이다.

1979년 대전으로 잠시 거주지를 옮겼다. 그리고 초등학교 교단에서 중학교 교단으로 발걸음을 한 뒤에 고등학교에서 자리를 비워놓고 물러 나왔다. 1969년부터 시작하여 41년 11개월 동안의 교직에서부터였다.

그리고는 객지 아닌 객지 생활의 객지 바람 속에서 객지의 흙냄새로 호흡을 깊이 하다가 언젠가는 고향으로 들어올 것이라는 생각을 착착 쌓아나갔다. 마침내 2007년 2월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터전에서 우선 집부터 리모델링하고, 아버님께서 콩과 마늘을 심으셨던 텃밭에 야생화를 심고, 정원수로 그늘을 만들기 시작했다.

2007년 5월 23일 수요일 다시 태어난 집에 ‘산애재(蒜艾齋)’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2012년 11월 28일, 아내와 함께 꿈길을 걷듯 산애재로 들어왔다. 하루하루 더불어 살았다. 그 사이사이에 평소 시 공부를 하면서 마음속 깊이 새겨놓고, 내 길의 귀감으로 삼아왔던 선배 시인들의 시작품을 모아 오석에 새겨놓았다.

27기의 시비(詩碑)에 시인들의 친필 글씨로 시가 쓰여졌다. 그리고 ‘詩碑園 蒜艾齋(시비원 산애재)’라는 현판석을 우리 고장 출신 서예가 국당 조성주(菊堂 趙盛周)의 글씨로 세워놓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예기(禮記)》 3년간편(三年間篇)에 약사지관극(若駟之過隙)이라는 글이 나온다. 즉 네 필의 말이 끄는 수레가 빨리 문틈을 지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시간이 대단히 빨리 가는 것을 말한다.


그만큼 빠르고 소중한 시간은 해마다 더해가는 나의 나이에 들어 점점 가속화되었다. 그 시간은 어찌나 빠른지 살펴볼 겨를도 없었다. 흐르는 시간을 볼 수 있다면? 아니 그 시간을 바로 볼 수 있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시간은 결코 보여주는 일이 없었다. 아니 애당초 시간은 누구에게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은 언제나 어제처럼 똑같은 모습으로 멈추어 있고, 그것은 다만 어떻게 시간 위를 걷고 있는가, 바로 바라보는 그 자취로만 보이고 남겨져 있음을 깨달았다. 이러한 깨달음은 내가 충남시인협회장을 맡으면서 더욱 가속화되었다.

2016년 제27회 한산모시문화제를 얼마 앞둔 어느 날이었다. 무조건 서천군청을 찾았다. 그리고 문화관광과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한산문화제를 한 자취를 영원토록 남겨질 수 있도록 모시시집을 펴내자는 것이었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만 넘쳤다. 그런데 뜻밖에 담당 과장이 내 생각에 선뜻 동의해주었다.

신났다. 너무 감사했다. 시집을 펴낸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문화에 대한 사려 깊은 마음이 고마웠다. 내 어깨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었다. 한산모시문화제 역사상 길이 남을 수 있는 시집 『바람 품은 모시올』은 그렇게 태어났다. ‘세모시 옥색치마’로 시작되는 김말봉의 <그네>로부터 이육사, 서정주, 박목월, 임영조 시인 등을 비롯하여 신경림, 오세영, 유안진, 문효치, 최원규, 임동윤, 이향아, 나태주, 조창환, 강영환, 김명수, 이은봉, 이재무 등등 국내 120여 시인들의 작품을 238쪽에 수록한 시집은 축제 기간 중 시 낭송에 참가한 시인은 물론 참여 관광객 전원에게 나누어주었다. 

한산모시시집 시집 『바람 품은 모시올』을 편집하는 동안 나의 가슴에서는 또 다른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모시올에 부는 바람은 내 가슴을 뒤흔들어 놓았다. 가만있자, 바로 나는 이 모시 속에서 어린 시절을 살아왔고, 지금도 그 눅눅하고 촉촉하게 밀려오는 모시의 향속에서 살고 있고, 모시와 함께 고향의 하늘을 이고 있지 아니한가? 곧바로 모시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모시 뿌리나누기로부터 시작하여 태모시로 수확되기까지의 재배 과정, 태모시로부터 모시 한 필로 태어나 한 벌의 모시옷이 되기까지의 전 제직 과정은 물론, 그 과정에서 사용하였던 갖가지 도구와 베틀의 각 명칭과 기능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자료를 모았다.

그리고 그 속에 얽히고설킨 우리 어머니들의 한 많은 삶의 이야기와 모시방을 이룬 아녀자들의 에피소드도 곁들였다. 무엇보다도 온갖 정성을 다하여 모시 한 필을 생산하였어도 일생을 통하여 모시옷 한 번 입어보지 못한 아녀자들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자 했다.

마침내 모시에 대한 시집 한 권이 완성의 기미를 보이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아르코 창작기금을 신청하였다. 그리고 전혀 뜻밖에 천만 원의 창작기금을 받게 되었다. 그 결과 2019년 모시시집 『모시올 사이로 바람이』라는 시집을 선보였다. 산애재에서 창작되어진 서천 소재의 첫 시집이었다.

그리고 2012년 귀향하여 산애재에서 다시 살게 된 이후 2020년 현재까지 8권의 시집을 펴내게 되었다. 이제까지 총 23권의 시집과 시선집 1권을 발간하게 되었다.

객지에 살면서 단 한 번도 천방산을 잊은 적이 없었다. 천방산이 머릿속에 떠오를 때마다 천방산으로부터 시작된 고향 마을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펼쳐졌다. 천방산 동쪽과 남쪽으로부터 시작된 물줄기가 도마천과 길산천으로 흘러내리면서 마침내 길산천으로 마음을 모아 하나가 되는 모습이 객지에서 순간순간 흩어졌던 마음들을 알뜰살뜰 달래주었다.

시간의 흐름은 어제보다 오늘이 더 빨랐다. 이제 시간을 잡아 자취를 모르는 길을 닦아 놓아야겠다. 문득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 중 한 명이자 미국의 초대 정치인 중 한 명으로 특별한 공적 지위에 오르지 않았으면서도, 프랑스 군(軍)과 동맹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미국 독립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낸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01.17.~ 1790.04.17.)의 일화(逸話) 하나가 떠올랐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경영하는 서점에 한 손님이 와서 책을 들고 물었다. “이 책 얼마요?” “1달러입니다.” “조금 싸게 안 될까요?” “그러면 1달러 15센트를 주십시오.” 손님은 프랭클린이 잘못 알아들은 줄 알고, “아니 깎자는데 더 달래?”하고 말하자, 그는 “1달러50센트만 냅쇼”라고 하였다. 손님이, “아니 이건 점점 더 비싸지잖아?” 하고 화를 내자 프랭클린은 “아, 시간은 돈보다 더 귀한 것인데 손님께서 시간을 소비시켰으니 책값에 시간비를 가산해야 할 게 아닙니까?”라고 하였다.


그렇다. 서천에 가산해 주어야 할 시간은 그리 길게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발걸음을 내딛을 곳은 수없이 펼쳐져 있다. 거기, 서천이라는 아름다운 산천을 한 걸음 한 걸음 걷노라면, 수없이 많은 인정의 꽃이 피어나고 있으며, 그 꽃의 열매가 손길마다에서 소리 없이 익어가고 있다.

천방산이 그러하고, 그곳으로부터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그러하다. 바로 서천 정체성을 향한 영원한 흐름이다. 그 속에는 상당 기간 동안 서천에서만이 일관되게 유지되는 고유한 실체로서 서천에 대한 주관적 경험이 함의(含意)되어 있다.

서천의 심오한 내부에서 일관된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과 다른 존재와의 관계에서 어떤 본질적인 특성을 지속적으로 공유하는 것, 이것이 바로 서천의 정체성이요, 서천군민의 본성임이 틀림없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 그러나 아무리 온누리를 두리번거려 보아도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오늘도 내일도 서천의 산하에 쉬지 않는 발걸음을 새겨놓다 보면 우리의 서천은 저절로 보이지 않는 존재로서의 확실한 존재로 우뚝, 두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 믿음 하나로 서천의 산하를 또다시 더듬어 가기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빠른 시간의 자취를 보기 위해서 시간을 아껴야 한다. 시간은 또 흐르는 물처럼 바람처럼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그 시간 사이에서 365일, 아니 366일 서천 산하(舒川 山河)를 향한 발걸음을 재촉하여야 한다.


자성(自省)을 위하여
                    구재기

1.
어떤 것이, 
어떠한 말이 
복이 되고 화가 되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을까 
자성(自省)으로 알아낼 수 있을까  
반(反)하지 않는 올곧은 삶에 
시기를 기다리게 할 수는 없다

2.
저녁 무렵의 어둠에
처마 밑을 찾아드는 참새는
어둠을 울지 않는다
다만 잠을 설쳐
푸덕거리는 일이 있더라도
아침을 위하여 서둘러
우는 일이 없다

나락이 익어
고개를 숙이기 전에는
참새들도 이따금
착한 사람처럼 화를 낸다
눈을 올바르게 뜰 수 있다면
이 또한 그러하겠는가

3.
방울 물은 비록 작아도
점점 큰 그릇을 채워간다
작은 울음이 쌓이기 시작하면
이 세상의 큰 울음이 된다

말[言]이 말로 상하여
말을 못하고
말만 보고 들을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더
자성(自醒)할 수는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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