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7. 두 그루 배롱나무와 더불어- 충남 서천군 기산면 영모리 <문헌서원(文獻書院)>을 찾아서 ④ 가을로 가는 발걸음의 급한 속도 속에서도 몇몇 가지에 붉은 꽃송이를 여전히 매달아놓고 있다. 옛 선비들은 몸체에 껍질이 없어 매끈하고, 속이 그대로 노출되어 투명하고 맑은 배롱나무의 모습을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한다. 그만큼 밝고 해맑은 몸체에 흰빛을 띠고 있으면서 부드러운 촉감에 이르기까지 배롱나무는 깔끔하고 청렴한 선비들을 많이 닮아 있다. 그래서일까, 목은 선생을 따르는 어느 이름 모를 선비가 선생을 추앙하는 마음을 모아 영각의 좌우에 배롱나무를 심어놓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배롱나무는 느긋하게 세월의 흐름에 따르는 양반과도 같다 하여 ‘양반나무’라 불릴 정도로 서두르는 기색도 없이 여유롭게 기다릴 줄 안다. 그러고는 다른 봄꽃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갈 때서야 비로소 번창한 가지 끝에 그 화려하고 아름다운 붉은 꽃송이들을 활발하게 불러들여 장관을 이루어놓는다. 영각 좌우로 한 그루씩 심겨진 배롱나무는 그 크기와 높이와 폭이 엇비슷하여 목은 선생을 따르는 문하생들이 다정스레 어깨를 겯고 있는 듯하다. 진수당(進修堂)으로부터 출입문으로 빠져나오려다가 잠
056. 누각(樓閣)의 다리 곁에서- 충남 서천군 기산면 영모리 <문헌서원(文獻書院)>을 찾아서③ 문헌서원은 강학당으로 들어가는 외삼문인 진수당과 제례를 준비하는 영모제로 들어가는 경륜당 누각(樓閣) 아래 출입구로 나누어져 있다. 바로 이 경륜당은 2층 누각으로 된 6칸의 강당을 말하는데, 그 밑으로 들어가면 바로 교육관에 이르게 된다. 보통 경사지에 지은 건물에서 누각의 다리 아래를 지나 고개를 숙이고 안으로 들어오게 한다. 높낮이의 조절의 의미도 있기는 하겠지만 이곳에 학덕이 깊은 스승을 만나러 오면서 고개를 뻣뻣이 들고 들어오지 말라는 뜻도 숨어 있다고 한다. 누각 중앙 통로에는 <머리조심>이라는 글씨가 붙어 있는 것도 미리 경계하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고 하겠거니와 거만하게 목에 힘을 주고 오는 방자한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도록 설계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그러하거니와 강륜당에 출입이 통제되어 들어가지 못하는 아쉬움보다 오늘날 같이 바르지 못한 학문으로 세속의 인기에 영합하려 애쓰는 곡학아세(曲學阿世)의 세태를 떠올리다 보니 하 좋은 가을날의 햇살도 오히려 그림자만 짙게 내려 그려놓고 있는 것만
055. 신명(身命)이 감응(感應)하는 곳에서-충남 서천군 기산면 영모리 <문헌서원(文獻書院)>을 찾아서② 일찍이 아버지 이곡은 원나라에 유학을 해 과거에 급제하고 그곳에서 벼슬까지 하여 널리 알려진 터에 아들 목은까지 원나라에 가서 급제를 하니 그 명성은 원나라 전국에 자자하였다. 목은은 원나라에 들어가 향시(鄕試)와 성시(省試)에 모두 장원급제하여 수재로 널리 알려진 뒤 한림원 검토관 학사벼슬에 임명되어 원나라 조정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이때 원나라 재상의 딸이 목은에게 연정을 품고 한 통의 편지를 보내게 되었다. <소녀는 이 나라 재상의 외동딸로서 방년 18세의 규수이옵니다. 이번에 목은 선생께서 장원급제하였으나 이 나라 조정 신료들의 시기와 질투로 억울하게도 1위 자리를 이 나라 선비에게 내어주고 2위로 내려앉은 내막을 이 소녀는 잘 알고 있으며 의분을 참지 못하였나이다. 불행히도 천하 제1의 명예를 탈취 당했사오나 천하 제1의 미녀와 천하 제1의 부귀를 얻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소녀의 부모님께서도 원하시는 바이오니 속히 회답을 주시옵소서.> 목은은 이미 고려에 아내가 있어 정중히 거절했다, 이 사실이 북경에 알려지자 원나라
054. 천손(天孫)은 어느 곳에 노니는가- 충남 서천군 기산면 영모리 <문헌서원(文獻書院)>을 찾아서 ① 마침내 문헌서원 주차장에 이른다. 햇살이 고울 대로 고와서 작은 티끌 하나 생각 하나 자칫 땅에 떨어뜨릴까 삼가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관리사무소 곁을 지나 가을나무의 그림자를 밟으면서 걷는다. 햇살이 고와 그림자의 모습이 확실하다. 그림자를 밟는다는 것이 어쩌면 내 자신의 그림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함부로 헛된 마음이어서는 안 된다. 그림자를 밟는 일이 결코 헤픈 몸짓이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 다짐해본다. 그러하거니와 자연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바로 눈앞에 앉아 계신 목은 이색 선생의 상(像)이 나타난다. 그런데 목은 선생의 상이 하얀 옥돌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 상과는 전혀 다른 재질로 세워진 목은 선생의 상은 숭고한 정신이 저절로 일게 한다. 고려의 충신으로서 자신을 버리지 아니하고 오직 고상하고 깨끗한 정신으로부터 존엄하고 거룩한 기품이 엿보이게 하는 목은 선생의 상은 이를 바라보는 사람에게 그 올곧고 완전무결(完全無缺)한 정신을 일깨워주는 듯하다. 2020년 10월 10일 토요일, 해가 창문에 매달리듯 기웃거리기 시작
053. 곰솔과 맥문동과, 그리고 바다- 충남 서천군 장항읍 송림리 <장항송림산림욕장(장항 솔숲)> 때로는 거친 바다의 바람은 이 곰솔밭에서나 맥문동밭에 이르러 막힌 가슴을 트여주고, 막힌 소통을 거침없이 뚫어준다. 앞선 물결의 거칠함을 뒤이은 물결이 자못 다스리듯 잠재워주고는 곰솔의 향기와 맥문동의 푸른 춤사위로 삼위일체(三位一體)를 이루어 놓고 있거니와, 이로써 천상(天上)의 바람과 지상(地上)의 푸르름과 대양(大洋)의 물결이 이루어놓고 있는 신비로운 방향(芳香) 속에 몸을 담지 않을 수 없다. 곰솔과 맥문동과 함께 바다는 하늘을 불러 하늘빛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곰솔과 맥문동과 바다에게는 바람이 있어야 한다. 바람이 있어야 맥문동은 맥문동의 푸른 잎으로 살아감을 밝혀줄 수 있으며, 곰솔은 곰솔대로 곰솔의 제값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 서늘한 바람을 무시로 불러들인 바다는 숨 돌릴 틈도 보이지 않은 채로 쏴아쏴아 스쳐 지나칠 때마다 삶의 흥취를 한껏 자아내게 한다. 처음 맥문동과의 만남은 벌써 2년 전, 2018년 6월 6일이다. 뜻하지 않은 손님이 산애재에 와서 장항 송림동의 맥문동밭에 다 가보았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처음 듣
052. 풍옥헌(風玉軒)을 찾아서- 충남 서천군 서천읍 둔덕리 용학동 풍옥헌(風玉軒) 조수륜(趙守倫) 선생은 천성이 총명하고 영특하여 어려서부터 식견이 특출하였고, 가정에서 글을 배워 이미 위기지학(爲己之學)을 깨닫는다. 어린 나이에 부친을 여의고 예제(禮制)를 다하여 복상(服喪)하다가 중병에 걸리기도 하는 등 홀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한 효자이기도 하다. 경기도 과천에서 태어난 그는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특히 타고난 자질과 진취적이며 씩씩하고 굳센 기상을 지닌 맑은 정신으로 학문에 돈독히 노력하여 김장생, 김상헌, 이정귀, 권필 등 제현들과 교유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특히 풍옥(風玉)은 어느 것에도 굽히지 않는 꿋꿋한 정신의 표상이라 할 수 있거니와, 선생의 인품이 얼마나 존엄하고 거룩하며, 고결하고 고매한 인품인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게 한다. 2020년 9월 10일 목요일 산애재(蒜艾齋.필자의 집필실)에서 빠져나와 시초면에서 벗어난다. 지방도 611호선인 서문로에 올라 서천읍내를 향하여 달린다. 매일이다시피 오가는 길이다. 그러나 C-19가 먼저 앞을 가린다. 마스크로 입을 봉한 채로 달린다. 달리다가 짐짓 멈춘다. 둔덕리 2리를
051. 365일, 서천 산하(舒川山河)- 구재기 시인과 함께 하는 [서천산하(舒川山河)] 연재 1주년을 맞아 그렇다. 서천에 가산해 주어야 할 시간은 그리 길게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발걸음을 내딛을 곳은 수없이 펼쳐져 있다. 거기, 서천이라는 아름다운 산천을 한 걸음 한 걸음 걷노라면, 수없이 많은 인정의 꽃이 피어나고 있으며, 그 꽃의 열매가 손길마다에서 소리 없이 익어가고 있다. 천방산이 그러하고, 그곳으로부터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그러하다. 바로 서천의 정체성의 영원한 흐름이다. 상당 기간 동안 서천에서만이 일관되게 유지되는 고유한 실체로서 서천에 대한 주관적 경험을 함의(含意)하고 있다. 서천의 심오한 내부에서 일관된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과 다른 존재와의 관계에서 어떤 본질적인 특성을 지속적으로 공유하는 것, 이것이 바로 서천의 정체성이요, 서천군민의 본성임에 틀림없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 그러나 아무리 온누리를 두리번거려 보아도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멈출 줄을 모르고 C-19는 한층 더욱 기승을 부린다. 입조차 마스크로 틀어막고 비로 곁에 있는 지우(知友) 사이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로 근접하지 못하도록 거리를 두게 한다. 그 거리는 일상사를
050. 소설가 운당 구인환 선생 생가를 찾아서(下)- 충남 서천군 장항읍 옥산리(봉근리마을) 생가의 마당에는 유독 눈부시게 하는 꽃나무 한 그루 멋지게 자라나고 있다. 눈부시다 못해 화려하다. 제철을 맞은 동백이다. 동백은 겨울철 눈 속에서 피는 붉은 꽃으로 유명하다. 흔히 대나무·소나무·매화나무를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하지만, 다른 꽃이 모두 지고 난 겨울에 피는 동백꽃을 추운 겨울에도 정답게 만날 수 있는 친구에 빗대어 세한지우(歲寒之友)라 부르기도 한다. 주인을 애타게 기다리며 피어났던지 온몸을 붉게 물들인 채 오똑하니 서 있다. 같은 나무라 해도 그 화려함에 반했음일까. 곁의 단풍나무 한 그루가 미쳐 새싹을 피워내지 못한 채로 가뜩이나 물먹은 가지를 동백 곁으로 자꾸만 뻗어나갈 듯 서 있다. 이제 봄이 좀 더 깊어가면 물오른 단풍나무 가지 곳곳마다에서 앙증스럽고 예쁘기만 하게 불그스름한 새싹을 틔워 이 생가를 아름답게 지켜나갈 것이리라. 선생의 모습을 그려보며 생가의 마당에서 밖으로 시선을 돌리려니 현관문 쪽에서 구인환 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운당 구인환 선생 문학비>로부터 물러나 생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생가 둘레에는 당초문
048. 서천 치유의 숲을 찾아서-충남 서천군 종천면 산천리 산 35-1 몇 발자국 앞으로 떼어놓고 보니 소나무 숲 사이로 정자 하나가 보인다. 비록 낮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하늘물빛’을 바라보기에도 넉넉한 시야(視野)를 마련해 준다. 빙 둘러 씨고 있는 산녘의 한가운데 자리한 호수의 이름이 곧 ‘하늘물빛’이란다. 누가 이리도 넓고 깊고 그윽한 천지(天地)를 한데 어울리도록 지상의 가장 맑고 깨끗한 물줄기를 한데 모아놓고 하늘과 물빛과 동일화를 이루어 놓았단 말인가. 이곳에서는 아무리 아름다운 이름을 붙여본다 하더라도 ‘하늘물빛’이라는 이름 이외에는 달리 어떻게 이름 지어 부를 수 없을 것만 같다. 하늘물빛, 하늘물빛- 거듭으로 되뇌어 불러보면 불러볼수록 온누리에 하늘의 푸르름이 절로 흘러넘쳐 마치 인간 세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와 신선이나 된 것처럼 두둥실 하늘의 흰구름을 올라 세상을 올바르게 굽어보도록 해준다. 우리나라에서의 장마는 원래 7월 중순에서 늦으면 8월 초에 끝나기가 보통이란다. 그런데 올해는 다르다고 한다. 2020년 장마기간은 6월 말부터 시작하여 8월 11일 현재 49일을 기록하고 있다 한다. 다행히 어제부터 볕이 들었으나
047. 마량포구의 ‘아펜젤러 순직 기념관’을 찾아서- 충남 서천군 서면 서인로 225번길 61 동백정교회 아펜젤러 선교사는 삶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하여 ‘조선’이라는 전혀 알려지지도 아니하고, 알 수도 없었던 미지의 땅에 들어온다. 그동안 살아왔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산천에서 낯선 사람들과 호흡하며, 오직 눈빛으로만 마음을 전하여 왔을 아펜젤러, 그는 분명 하늘을 우러르며 자기 자신을 쉼 없이 다스려왔을 것이다. 그의 마음속에는 선교라는 확실한 목표 하나를 오직 믿음으로 다짐하고 닦아가며, 분명한 목표를 하나하나 개척하는 힘을 기르기도 하였을 것이다. 낯선 땅 낯선 하늘 아래 삶의 빛을 전하는 고귀한 통로를 하나하나 개척해온 아펜젤러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간다. 그가 이루어놓은 한국 최초의 근대 사학, 한국 최초의 서양식 학교인 배재학당을 통하여 새로운 시각으로 삶의 조명할 수 있는 씨앗을 뿌림으로써 울창한 숲을 이루고 새로운 열매를 맺어놓고 있지 아니겠는가? 2019년 10월 10일 목요일. 오후 3시의 햇살은 마냥 곱기만 하다. 곱다. 따스하다. 마량포구 [한국최초 성경전래기념공원]을 빠져나와 마량진의 골목길에 접어들자 햇살은 끝까지 발걸음을 같이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