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 봉서사(鳳棲寺)를 찾아서 - 충남 서천군 한산면 건지산길 122 2019년 10월 17일 목요일 오후. 산애재(蒜艾齋)를 나선다. 가볍게 마음을 모은다. 마악 대문을 나서는데 어디선가 툭, 하는 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대문 곁의 잔디 위에 붉은 감 하나 떨어져 있다. 유난히 붉은 감이다. 이미 떨어진 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붉어질 대로 붉어진 감일수록 쉽사리 낙하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익을 때가 아닌데 익어버려 통째로 떨어져버리는 붉은 감알, 성급하게 삶을 마감한듯하여 안쓰럽기도 하다. 대부분 익지 않은 감들은 그대로 감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으면서 서서히 익어간다. 익을 때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 그때마다 감나무 가지는 지상을 향하여 공손히 고개를 늘어뜨린다. 산애재를 빠져나와 가을 들판을 가로지른다. 그야말로 황금물결이다. 태풍과 당당히 맞서 이겨낸 벼일수록 꼿꼿이 서서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런 벼일수록 더욱더 짙은 황금물결을 이룬다. 승용차의 핸들을 이리저리 꺾으며 달리는 마음에 풍요가 넘친다. 그동안 농부들의 발자국 소리를 얼마나 많이 들으면서 오늘날을 기다려 왔을 것인가. 농부들의 발자국 소리가 황금물결을 이르고 있다.
009. 마산면 새장터 3․1운동 기념탑 앞에서 3·1 독립 선언은 우리 민족의 독립이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의 단계라고 말한다. 신분과 계층, 이념과 사상, 종교가 다르더라도 우리 민족은 오직 독립이라는 하나의 공통된 목표를 위하여 열과 성을 다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초개와 같이 버리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리도 바랐던 민족의 해방 이후에 마주한 민족의 또 다른 고통, 곧 분단과 전쟁, 오랜 대립과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언제까지 이를 극복해야 하고, 우리의 진정한 의미의 한반도 평화를 이루어낼 것인가. 2019년 9월 26일 목요일 오후 날씨가 무척 더웠으나 하늘이 보살핌이 있었던가, 구름이 얄포름하게 끼어 있어 그다지 더운 맛이 없어진다. 좋다. 마산면 소재지를 지날 무렵 문득 ‘새장터 3․1운동 기념탑’의 모습이 떠오른다. 몇 번 그 앞을 지난 적은 있었지만 자세히 살펴볼 요량으로 승용차의 핸들을 꺾어 ‘새장터 3․1운동 기념탑’이 세워져 있는 곳으로 향한다. 바로 마산초등학교 못미처에 위치해 있다. 특히 이곳에는 필자가 1979년 4월 첫 부임지로 근무한 마산초등학교 바로 곁이기 때문에 기념탑을 찾아가는데 옛 생각이 떠올라 조금은 설레기도 한다. 어떻게
008. 임벽당 김씨(林碧堂 金氏)를 찾아서(下) - 충남 서천군 비인면 남당리 어지러운 시대에서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곧은 마음의 길을 바로 보면서 숱하게 겪을 수밖에 없는 온갖 질곡 속을 헤치며 살아가기가 얼마나 고난스럽겠는가? 인류 역사를 바꿔놓은 인류의 성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지만 역사의 흐름에서는 여전히 난세를 부르고, 고난의 역사를 펼쳐놓은 파렴치한 치정(治政)의 역사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작은 개울을 건너자 곧바로 이어지는 반듯한 길, 그 끝머리에 청절사가 초여름의 햇살 아래 찬연한 모습으로 서 있다. 둘레가 환하다. 청절사(忠節祠) 위로 펼쳐진 하늘도 한결 맑아져 있다. 그러나 이마로 흐르는 땀방울은 어쩔 수 없다. 땀의 흘러내림을 손수건으로 달래고 있는데 안내판이 기다리고 있다. 충청남도문화재 자료 제 399호(2008년 4월 10일 지정). 연산군 때 연산군의 폭정을 극간하다가 교살당한 좌의정 성준에 연좌되어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으로 석방되어 이곳에 은거했던 첨지중추부사 유기창(俞起昌)과 예조판서를 지낸 유여림(俞汝霖)과 선조때 좌의정으로 난을 저리하여 광국일등공신에 오른 유홍(俞泓)과 인조 때 배청파의 거목으로서 병자호란 때 척화
007 임벽당 김씨(林碧堂 金氏)를 찾아서(上)- 충남 서천군 비인면 남당리 단 한 마디 허투로 침묵을 깨뜨리지 않은 채로 꼿꼿하게 서 있는 은행나무의 올곧은 모습이야말로 거대한 침묵의 표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일찍이 말하는 것은 인간으로부터 배우고, 침묵은 신(神)들로부터 배운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은행나무가 침묵으로 일관하며 무럭무럭 자라나는 동안 임벽당은 그 허구한 세월 동안 말하는 것을 침묵으로 배우면서, 그 침묵으로 시를 써온 것은 아닐까. 2019년 6월 14일 금요일 오후 4시 초여름의 한낮은 이미 지났지만 아직도 여름의 더위는 그칠 줄 모른다. 너무 덥다. 초여름답지 않게 하는 것은 내리쪼이는 일찍 여름으로 찾아온 햇살 때문이다. 길거리나 산과 들에 햇살로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산과 들의 초록은 아침보다 더 푸르게 짙어져 가고 있다. 그러나 거리의 그늘마저도 열기를 가득 품고 있어서 좀처럼 더위를 피할 수 없다. 훅훅 솟아오르는 열기에 부지런히 땀을 흘려댄다. 너른 주차장이라 하지만 겨우 틈을 비집고 들어가 주차해놓은 곳이라곤 뙤약볕 아래일 뿐이다. 차창을 열어젖히자 그동안 차속에서 가뜩이나 옹크리던 열기덩어리가 한꺼번에 밀려와 얼굴 위에
서천 성북리 오층석탑(舒川 城北里 五層石塔)각 부재의 치석(治石) 및 구조나 형식 등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백제계 석탑양식의 지방분포에 따라 그 전파 경로를 알아내는 데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한다. 2017년 4월 23일 오후의 봄 햇살은 더욱 따스하다. 멀리 바라보아도, 가까이를 굽어보아도 온통 봄기운으로 가득한 대지는 생명의 약동을 그대로 보여준다. 산과 들에서 햇살을 온몸으로 가득 담고 있는 푸르름들이 한결 싱싱해 보이면서도 부드럽게 느껴진다. 국도 21번을 따라 비인으로 달려가는 게 아니라 봄의 가슴 속으로 뛰어들어 동행하는 기분에 휩싸인다. 그렇게 점점 깊어져 가는 봄날 오후. 성내 사거리에서 잠시 머물다가 곧바로 서천 성북리 오층석탑(舒川 城北里 五層石塔) 앞에 이른다. 오래인 지우(知友)라도 만난 듯이 반갑다. 그 동안 몇 번인가 지나치거나 만나왔던 터라 이제는 두 눈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탓이리라. 탑 앞에 이른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천천히 기단부(基壇部)로부터 탑신부(塔身部)로 점차 시선을 옮기면서 마침내 상륜부(相輪部)에 이르자 여느 때와는 다르게 다가오는, 다소 긴장된
005. 용당진사(龍堂津祠. 龍堂山. 서천군 장항읍 소재)를 찾아서 어느 곳을 찾아보아도 고장을 지켜왔던 옛 조상들의 역사와 문화가 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동백대교의 개통에 따라 금강과 연계한 용당진사 재현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용당진의 용왕굿이 장항의 여러 축제와 함께 장차 관광사업의 일환으로 발전되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2018년 7월 5일 금요일 오후 가뭄속의 여름 날씨는 온몸을 훅훅 달아오르게 한다. 몇 발자국 떼어놓기가 바쁘게 이마에서 흐르는 땀방울은 달랠 수가 없다. 그러나 발걸음은 가볍다. 장항으로 달리는 차창의 문을 활짝 열어놓으니 밖으로부터 밀려서 들어오는 열기가 오히려 더 따갑다. 차창을 꼬옥 닫아버리고 에어컨을 켠다. 그러나 한창 더위가 가실 무렵 이미 핸들에서 손을 뗀다. 쉽사리 동백대교 교각 밑에 차를 세운다. 저만큼에서 한여름의 짙푸른 나무들이 우거져 있는 모습을 두 눈 안으로 들어온다. 장항 용당산의 용당진사(龍堂津祠)가 자리했던 곳이란다. 차에서 내려 용당진사의 전경이 가장 잘 보인다는 동백대교의 인도를 따라 성큼 위로 올라간다. 연이어 질주하는 차량들의 바퀴소리가 두 귀에 가득 차오
004. 동백정冬柏亭 동백꽃을 찾아서 -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마량리 313-4 아낌없이 절정의 순간을 버릴 줄 아는 동백나무 동백꽃. 수없이 많은 꽃들이 제 아름다움을 돋보이며 향기를 내뿜으며 마냥 화냥기를 엿보이다가 그 자리에서 꽃잎을 하나 둘씩 떨어뜨리면서 추하게 고스라지거나 말라 붙어버리는데, 동백은 절정의 아름다움일 때 통째로 뚝, 떨어진다. 뇌성벽력이라도 몰아칠 듯이 뚝, 거친 바닷물결을 달래기라도 하듯이 천인단애의 절벽 아래 철썩, 붉은 꽃송이를 내던져놓는다. 2015년 4월 19일. 산애재蒜艾齋에 반가운 손님이 오셨다. 기분이 매우 좋았다. 내외분이 오셨다. 내가 좋아하는 선배 시인 두 분의 내외였다. 내가 퇴임 전 2007년도부터 아버님께서 물려주신 고향집을 세칭 리모델링하고 ‘산애재蒜艾齋’라는 당호를 붙인 다음 각종 야생화와 정원수룰 가꾼다는 소문에 격려차 오신 것이었다. 그러하거니와 어찌 반갑지 아니하겠는가? 서천 기차역 도착예정 시각에 맞추어 서천역으로 나가고, 반가운 악수를 나눈 다음 곧바로 찾아간 곳은 바로 동백정冬柏亭, 그 무리진 동백숲의 동백꽃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서천을 출발하여 한국관광공사 100대 드라이브 코스로 선정된 서천
003. 기벌포 해전(伎伐浦 海戰) 전망대에 올라 -충남 서천군 장항읍 장항산단로34번길 74-45(장항읍 송림리 산 58-48) 2019년 6월 6일 수요일. 초여름의 날씨는 오랜 가뭄에 굶주렸던 물줄기를 만난 메마른 땅처럼 온몸에 상큼함을 안겨준다. 가벼운 차림으로 문을 나선다. 해마다 음력 4월 20일 ‘모래의 날’이라고 해서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들이 수십 리 새벽길을 열어 가던 바로 장항송림백사장을 향한다. 밭이며 논이며, 집안 살림이며 지친 삭신을 모래로 찜질을 하면 효험이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송림백사장의 모래는 고려시대 정 2품 평장사 두영철이 이곳으로 유배를 와서 모래찜질로 건강을 되찾았다고 하지 않는가. 이곳의 백사장 모래는 염분과 철분, 그리고 우라늄 성분이 많아 각종 질병에 효험이 있다 한다. 특히 한해 중 모래의 날에 모래찜질을 하면 만병에 좋다는 풍속이 있다. 송림백사장의 사구를 이루고 있는 곳은 곧바로 흑송의 숲길에 이른다. 수령 40~50년 된 흑송(일명 곰솔) 13만여 그루가 하늘로 치솟아 이룬 그림자 밑으로는 싱싱한 맥문동이 바닷바람에 쉬지 않고 온몸을 흔들어대는 맥문동 밭이다. 그 흔들어대는 모습은 흑송의 상큼
002. 서천 남산성(舒川 南山城)에서 - 충남 서천군 서천읍 남산리 산22-1 2019년 5월 3일 금요일. 절정에 이른 봄의 햇살은 한낮으로 치달리면서 맑을 대로 맑아져 성숙함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관광객들로 북적스러운 서천 특화시장의 주차장에서 바라본 서천 남산은 온통 연초록의 신록으로 뒤덮여 있어 싱그러움을 그대로 전한다. 몸이 날아갈 듯 가볍다. 보이는 족족 모든 풍경들이 홍모의 날개를 단 듯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가 싶더니 어느 사이 환한 웃음을 선뜻 앞세워 터뜨려놓는다. 절정의 봄은 하나의 커다란 웃음 속에 모든 산천을 끌어 안아주는가 보다. 문득 노천명의 <푸른 오월>이라는 싯구절이 떠오른다. ‘보리밭 푸른 물결을 헤치며/ 종달새 모양 내 마음은/ 하늘 높이 솟는다’ 절정의 봄 날씨는 자못 때 이른 여름날씨에 빠진 듯 국도 4호선의 굴다리를 지나면서 서늘한 기운으로 이마를 찐득한 물기를 훔쳐내게 한다. 문득 두 눈 안으로 가득 차오르는 남산마을이 환하다. 분명 북향의 마을임에도 어찌 저리도 푸르고 밝고 맑을 수 있으랴. 과연 계절의 여왕의 나라처럼 보인다. 그렇다. 아마도 시인 노천명은 저리고 아름다운 봄을 앞자락에 가득 품고
- 연재를 시작하면서 객지에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1979년 3월 구두끈을 졸라매고 대전으로 출발하여 주로 홍성에서 머물며 살아왔다. 그리고 2012년 11월 겨울바람이 조금씩 살아나는 날 고향의 집에 몸을 내려놓았다. 33년만의 일이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 고향의 바람이 먼저 반겨주었다. 바람이 맛있었다. 그래, 이제 고향의 하늘 아래 펼쳐진 고향의 땅을 밟아보기로 하자. 고향을 빛낸 인물들, 조상이 남겨놓은 유물과 유적들, 그리고 아름다운 산하의 품에 안겨보고 싶었다. 고향의 품속에 푸욱 빠져들기로 하였다. 잦은 고향의 말씀을 소중하게 모실 것이다. • 충남 서천 시초 신곡리 출생 • 197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 시집 『휘어진 가지』와 시선집 『구름은 무게를 버리며 간다』 등 다수 • 충남도문화상, 시예술상본상, 충남시협본상, 한남문인상, 신석초문학상 등 수상 • 충남문인협회장 및 충남시인협회장 역임 • 현재 40여년의 교직에서 물러나 시초면 신곡리 <산애재蒜艾齋>에서 야생화를 가꾸며 살고 있음 • Cafe : 산애재(蒜艾齋 http://cafe.daum.net/koo6699) 001. 천방루(千房樓)에 올라 - 충남 서천군 문산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