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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장미화 나이 일흔 다섯,...사기 당하고 3년만에 이혼 후 생계형 가수로!

  • 김연희 기자 news@newseyes.co.kr
  • 등록 2020.03.27 20: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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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n뉴스=김연희 기자]'TV는 사랑을 싣고'에서 가수 장미화를 조명해 네티즌들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안녕하세요', '봄이 오면' 등 수많은 명곡과 파워풀한 가창력, 화려한 무대매너로 56년 째 사랑받고 있는 가수 장미화가 3월 27일 방송되는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해 KBS '아마추어 톱싱어대회'에서 만나 가족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친언니처럼 보듬어 줬던 백현주를 찾아 나선다.

장미화는 최근 방송에서 가수 인생으로서의 과거와 현재를 전했다.

당시 방송에서 장미화는 “남편이 사업에 실패해 할 수 있는 건 노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남편은 노래하는 사람하고 살 수 없다고 하더라”며 이혼 뒷 이야기를 고백했다.

이어 그는 “남편의 빚이 100억정도였는데 1993년도부터 제가 갚기 시작했다. 집을 다 주고도 오피스텔도 주고 땅도 주고 다 줬다. 노래 관둘 때까지 30년 부른 값을 다 털어주고도 모자랐다”며 빚을 지게 된 사연을 설명했다.

장미화는 “100억 정도 됐다. 1993년 당시 제가 소유했던 4억원대 주택, 오피스텔, 땅 등 모든 것을 다 줬다. 보증에 대한 것 모든 부분을 다 갚아줬다”고 말했다.

또 그는 “당시 야간 업소 무대에 올랐는데 취객이 ‘너 이혼했냐’라며 막말을 했다. 그 자리에서는 당당하게 대처했지만 집에 오면 서러움이 밀려왔었다. 삶이 역겨웠다”며 고생을 했던 시간을 회상했다.

1946년생으로 올해 나이 일흔 다섯살인 장미화는 1965년 서울중앙방송(지금의 KBS 한국방송공사)이 주최한 가수 발굴 노래자랑 탑 싱어 선발대회로 가수로 데뷔했다.

70년대, 허스키한 보이스와 화려한 스타일로 당대 여가수들과는 다른 매력을 보여준 가수 장미화는 안녕하세요.의 열풍을 몰고 왔던 그녀는 어느덧 데뷔 50주년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누구보다 화려하게 빛났던 그녀가 오랜만에 시상식을 찾았다.

한 해 동안 가요계에서 도드라진 활동을 보인 가수들에게 상을 주는 시상식. 세월이 흘러 후배들에게 무대를 내어주는 가요계 대선배가 됐음에도 여전히 그녀는 무대 위에서 다시 빛날 날을 준비하고 있다. 행사와 방송 스케줄이 많지 않은 요즘에는 자신의 히트곡을 만들었던 작곡가에게 노래레슨을 받으며 오랜만에 나올 신곡 준비에 여념이 없다.

연륜이 쌓일 대로 쌓인 베테랑 가수임에도 한창 활동하는 가수들 못지않게 자기관리를 하며 무대에 설 준비를 한다. 예순아홉인 지금, 신인의 마음으로 돌아가 프로필 사진을 남기는 그녀. 전성기 못지않은 열정으로 노래를 놓지 않는 천생 가수다. '왕년의 스타'가 아닌 늘 준비된 '현역 가수'로 살아가는 황혼의 디바를 만났다.

장미화는 "저는 목소리가 안 나오는 순간까지 노래할 거예요. 불러주는 사람이 있는 한. 제 노래를 듣고 '저 여자 아직 안 죽었다, 목소리가 쩌렁쩌렁 괜찮네' 이런 얘기를 들을 수 있게 더 열심히 하고 노력하는 거죠"라고 말한다.

쾌활하고 씩씩한 현역 가수 장미화. 그녀에게는 사람들이 잘 몰랐던 아픔의 시간이 있었다. 화려했던 전성기에 돌연 은퇴를 선언하며 선택한 결혼. 하지만 행복했던 결혼 생활은 3년 만에 끝이 났다. 이혼과 함께 아들의 양육권을 갖기 위해 전 남편의 빚을 떠안아야 했던 장미화. 이후 가요계로 복귀 했지만 빚을 갚기 위해서 생계형 가수가 될 수밖에 없었다.

33년 간 홀로 아들을 키우며 아픈 노모의 병수발까지 도맡았던 그녀. 하루 12군데의 야간업소 무대를 오르며 집안의 가장 역할을 자처했다. 장미화가 모진 세월을 버틸 수 있었던 건 하나뿐인 아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엄마 장미화의 애틋한 모정으로 번듯한 사진작가로 성장한 아들은 그녀의 유일한 버팀목이자 자랑거리다.

장미화가 미움과 원망을 안고 헤어진 전남편과 왕래를 시작하게 된 것도 바로 아들 때문이라고 한다.

장미화는 "그전의 제 인생은 장미꽃이었다면 지금은 목단꽃이 아닌가. 겹겹이 쌓인 목단꽃 속에는 예쁜 내 아들이 있다는 거죠. (아들을 위해서라도) 아이 아빠가 잘됐으면 좋겠어요. 만약에 내가 이 세상에 없다면 남아서 내 아들과 함께 할 사람이니까요"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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