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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기획탐방】천방산千房山에서 서해를 부르다...시인 구재기와 함께하는 '舒川山河(서천산하)' 3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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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 천방산千房山에서 서해를 부르다 - 서천군 시초면, 문산면, 판교면에 걸쳐 있는 산

아, 천방산! 서천에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 서천을 고향으로 둔 사람이 서천의 중심지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천방산을 어찌 떠올리지 않을 수 있으랴.

그만큼 서천사람은 천방산을 꿈꾸고 아끼고 사랑하고 좋아한다. 멀리에서 바라보면 인자하기 이를 데 없는 아버지의 모습, 품에 안기면 어머니의 부드러운 가슴 같은 천방산은 언제 어디서나 서천사람들과 마음을 함께 한다.

비록 백제의 슬픈 패망의 전설을 안고 있다 하더라도 그 슬픔을 내면 깊숙이 감추어둔 삶으로 에너지화한다.

그래서 겉으로는 거칠지 않는 푸근함에 누구든지 삶의 슬픔까지도 스스로 다스릴 수 있는 지혜로움을 터득한다.


천방산千房山은 판교면, 문산면, 시초면에 걸쳐 산자락이 넓게 퍼진 큰 산으로 해발 324m 산이다.

그다지 높지 않고 산세도 험하지 않아 가벼운 산행을 즐기기에 좋다. 천방산 바로 서쪽으로는 봉림산이 위치해 있으며, 그와 잇대어 천방산은 동서남 방향으로 7개의 봉우리를 병풍같이 둘러치고 서북과 동북쪽 방향으로 시원한 풍광을 펼쳐놓는다.

천방산은 산애재蒜艾齋 문밖으로 나서면 가슴 가득 안겨온다.

초등학교 시절이면 곧바로 소풍으로 오르내리던 산, 뿐만 아니라 그 기슭에서 수없이 캐먹던 알밴 칡뿌리와 잔대와 도라지와 더덕들은 어린 시절의 허기를 채워주었고, 절골 샘물로부터 흘러내리는 골짜기에서는 돌 틈의 가재 잡이를 즐기다 보면 시간은 절로 흘러내리곤 하였으니, 그래서인지 추억은 언제나 감미롭다.

산애재가 아닌 객지에서 한 세대 좋이 보내는 동안 매일이다시피 가슴 깊이로부터 허공에 그려지던 천방산, 아름다운 추억으로 보물처럼 쌓이게 하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2020년 2월 1일 토요일. 마을의 노인회관에서 점심 식사를 마친 다음 마을 사람 4명과 함께 천방산에 오르기로 한다.


마을 회관 밖으로 나오자마자 환하게 다가오던 천방산은 미세먼지로 인하여 가까운 곳이 흐미하게 보여 안타깝다. 

상전벽해와도 같이 변해버린 초등학교 뒷마을의 작은 고갯길에 이르자 이름만으로도 천방산의 옛 전설을 말해주는 듯 ‘천방굴’이란 마을이 고스란히 보인다.

천방산 골짜기 물을 모아 흘러내리는 한길 위로는 옛 이름만으로 다리 모양을 보이는 한길의 ‘하마다리’가 나타난다.

하마다리에서 둑길을 따라 ‘뒷골’ 마을에 이르기가 무섭게 곧바로 어리산 능선을 타고 오르기 시작한다. 어리산은 천방산에 오르는 능선 봉우리이기도 하여 초등학교 시절 소풍을 갈 때 곧잘 이용하였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전혀 다르게 변한 오름길은 지난날을 송두리째 지워버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눈앞에 펼쳐진다. 어느 가문의 종산인 듯 조상들이 잘 모셔진 묏등 곁의 양지바른 길을 따른다.


등산로를 알려주는 안내도가 보인다.

천방산 정상까지의 거리는 2km. 소요시간은 30분 정도란다. 조근조근 오른다. 헐벗은 나무 몇 그루 간신히 버티며 자라나던 옛날의 산기슭에는 어느 사이 그리도 우거진 숲으로 변해버린 것일까.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며 울창한 숲을 이루어준 나무들이 여간 대견한 게 아니다. 바라만 보아도 흐뭇하기 이를 데 없다. 더더욱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피톤치드를 내뿜어 미세먼지에 시달리고 있는 폐부 깊숙히 신선함을 안겨주니 상큼하기만 하다.

어리산으로 오르는 길은 이미 잘 다듬어져 있다. 면민의 건장 증진을 위한 등산길이  어리산으로 오르는 길을 이끌어준다.

면민의 건강증진을 생각해 주는 행정당국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걷기를 거듭하다가 문득 걸음을 멈춘다. 수십 년, 아니 1세기는 좋이 넘었을 세월을 고스란히 모은 모과나무 한 그루가 빽빽하게 서 있는 소나무 숲 사이에서 방자스럽게도 혼자 당당하게 서 있다.

깔끔한 몸매에 상서로움이 깃들어있는 듯하다. 모과나무 밑동에는 누가 그리도 살뜰하게 모아놓았는지 이미 익어 떨어진 샛노란 모과를 고스란히 모아놓아 산속의 색다른 아름다움으로 돋보인다.


산은 양지바른 쪽에 사람을 묻고/ 높은 꼭대기에 신을 뫼신다.// 산은 사람들과 친하고 싶어서/ 기슭을 끌고 마을에 들어오다가도/ 사람 사는 꼴이 어수선하면/ 달팽이처럼 대가리를 들고 슬슬 기어서/ 도로 험한 봉우리로 올라간다.// 산은 나무를 기르는 법으로/ 벼랑에 오르지 못하는 법으로/ 사람을 다스린다.// 산은 울적하면 솟아서 봉우리가 되고/물소리를 듣고 싶으면 내려와 깊은 계곡이 된다. ― 김광섭의 <산> 일부

조금조금 오르다 보니 이제는 가파른 오름길이다. 가파른 언덕길로는 이미 희미하게나마 발걸음의 흔적이 나타난다. 일행은 잠시 쉼을 끝낸다. 돌아가는 길이 아니라 흔적만이 있는 샛길로 천천히 오른다.

숨 차오르기도 하였지만 갈 수 없는 추억의 길에서 보물이라도 찾아내기라도 할 듯 어슴프레지는 기억을 더듬는다.

부지런한 걸음을 계속 이어간다. 높이를 더할수록 굽어보아는 고향마을이 훤히 보일 것이 분명하지만 지금은 헐벗은 민둥산의 옛날이 아니라 수목으로 밀집해 자라난 오늘날의 숲이라서 마을을 굽어보기는 아무래도 천방산 정상에서 맛보아야 할 듯하다.

급한 발걸음에 재촉하기를 거듭한다. 옛길을 찾는 길은 지난날의 추억으로 가득하여 좋은 보물을 찾아내듯 값지고 즐겁다.


올라갈수록 점점 더 넓어지는 시야, 그러나 앞을 볼 수가 없다. 50년 전 민둥산이었던 산들은 이제 울창한 숲으로 성장해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알프스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1960, 70년대 경제 상황과 에너지 소비의 변화는 우리나라 산림녹화의 성공을 이루게 한다.

특히 1970년대까지 비약적으로 경제가 성장하면서 가정용 연료로 사용했던 장작과 숯 등 목질계 연료의 사용이 줄었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농촌인구가 감소한 것도 숲의 나무가 베어지는 속도를 조절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1982년 UN 식량농업기구(FAO)에서는 한국을 "2차 세계대전 이후 산림복구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로 세계 4대 조림 성공국가로 영국, 독일, 뉴질랜드와 함께 우리나라를 꼽은 것이다.

그러고 보면 수많은 애림 국민들과 중앙정부, 산림청, 지방자치단체, 산림공무원, 군부대, 산림조합원은 물론 심지어 어린 초등학교 학생들을 비롯하여 중․고등학교 각급 학교 학생들이 모두가 일치단결하여 정성껏 나무를 심고 가꾸던 기억이 새롭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1970년대 초 어린 초등학교 학생들을 이끌고 무너져버린 골짜기에 겨우겨우 계단을 만들고 아카시나무나 오리나무를 비롯하여 갖가지 나무를 심고, 미리 모아놓은 잔디씨를 뿌렸던 일이 떠오른다. 그때 그 아이들도 이제는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소나무처럼 건장하게 자라났으리라.

그 결과 지금처럼 우리나라가 푸르고 울창하게 잘 녹화된 것을 직접 확인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는 전 세계로부터 경제발전과 산림녹화를 동시에 성공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빛나는 기적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이 푸른 숲 조성의 배경은 또한 무연탄이며, 에너지의 전환을 가능하게 만든 탄광 노동자들이야말로 산림녹화의 유공자로 추앙받아야 할 사람들이 아닐까?


산림청은 1998년부터 미얀마 중부 건조지역 600ha에 나무 심고 조림기술도 넘겨주고 있다 한다. 그러하거니와 울창한 산봉우리에 올라 산 아랫마을의 풍광을 바라볼 수 없는 행복(?)을 누리게 된 것이다.

어리산의 능선에 올라 아름다운 산 아래 풍광을 바라보지도 못한 채로 산등성이의 오솔길을 따라 다시 발자국을 옮긴다. 옛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게 되어버린 길이지만 산림녹화의 보람을 가슴으로 간직하면서 천방산의 정상을 향하여 오르는 발걸음을 가볍게 다스려 본다.

문득 산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시인 단테(Alighieri Dante.1265-1321.《신곡》을 쓴 이탈리아의 가장 위대한 시인)는 산 위에서 이 세상을 굽어보는 것을 즐기기 위하여 높은 산에 자주 올랐다고 한다.

그래서 예술사와 문화사를 최초로 연구한 스위스의 역사학자 부르크하르트(Jacob Christopher Burckhardt.1818-1897)는‘등산을 위한 등산’을 한 유럽 최초의 인물이라고 단테를 평했단다.

한편 이슬람의 예언자로 역사상 위대하고 영속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인 마호메트((Muhammad.570년경-632)가 어느 날 산을 꾸짖어 딴 곳으로 옮기게 한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서 산이 쫓겨 가는 구경을 하려고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예정된 시간이 되어서 마호메트가 엄숙한 표정으로 관중들 앞에 모습을 나태내자 그들은 모두 긴장하여 숨을 죽였다. 마호메트는 준엄한 목소리로 산을 향하여 호령했다.

“산아, 냉큼 옮겨 가거라!” 그러나 산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호매트는 다시 한번 호령하였다. 그래도 산은 여전히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군중들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하였다.

이때 마호메트는 태연하게 “아무리 말을 해도 이놈이 옮겨가려고 하지 않으니 옮겨갈 줄 아는 내가 옮겨가면 그게 그 턱이겠지…, ”하고 산과 사람들을 남겨놓은 채로 자기 혼자 어슬렁어슬렁 걸어가 버렸다.


어리산으로부터 천방산까지의 거리는 1.1km임을 이정표가 알려준다. 첩첩하게 쌓여있는 낙엽이 몇 해를 거듭하였는지 발걸음을 푹신하게 다독여준다.

산이란 원래 태어난 그대로, 생겨난 그대로의 모습으로 하늘을 향해 드높고 크고, 골짜기로 깊어있을 뿐만 아니라, 생각이 깊고 점잖으며 엄격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하거니와 범연한 사람으로서는 그 뜻을 헤아릴 수 없으니 산이 내리는 그림자조차 함부로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산이 저물 무렵마다 짙은 그림자를 인간 세상에 내려놓는 까닭이란 바로 그림자 속에 말하고자 하는 바 무언의 뜻을 품어주어 인간 세상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바로 보라보게 하는 데에서 찾아보도록 하는 지도 모른다.

마침내 천방산 바로 턱밑에 이르자 천방산은 쉽게 길을 열어주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가파르게 오르는 길 한편으로는 굵은 밧줄로 등산로를 이끌게 하고 있다. 숨이 헉헉 차오른다.


바로 그때 정상에서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반갑다. 바로 얼마 전 <붱바위>에 함께 올랐던 바로 그 죽마고우竹馬故友이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손길에 이끌려 함께 천방산으로 소풍 왔던 바로 그 동창생이다. 정상에서 함께 조망하면서 미래를 꿈꾸던 바로 그 시절을 꿈속처럼 만난다. 그리고 마침내 정상에 오른다.

둘레를 굽어본다. 꿈을 높여주던 장항 제련소의 굴뚝이 보이련만 미세먼지가 가로막는다. 가슴을 마음껏 펼 수 있는 서해바다에 뛰어들고 싶었지만 이 또한 미세먼지가 허락해 주지 않는다.

정상에 올라 정상의 조망을 즐기지 못한 채로 정상에서 미세먼지 속의 서천 산하를 굽어본다. 다시 꿈을 꾸기에 이미 많은 세월이 흘러가버렸고, 우리에겐 벌써 종심從心의 중반이 분명하게 보일 만큼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아, 천방산! 서천에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 서천을 고향으로 둔 사람이 서천의 중심지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천방산을 어찌 떠올리지 않을 수 있으랴.

그만큼 서천사람은 천방산을 꿈꾸고 아끼고 사랑하고 좋아한다. 멀리에서 바라보면 인자하기 이를 데 없는 아버지의 모습, 품에 안기면 어머니의 부드러운 가슴 같은 천방산은 언제 어디서나 서천사람들과 마음을 함께 한다.

비록 백제의 슬픈 패망의 전설을 안고 있다 하더라도 그 슬픔을 내면 깊숙이 감추어둔 삶으로 에너지화한다. 그래서 겉으로는 거칠지 않는 푸근함에 누구든지 삶의 슬픔까지도 스스로 다스릴 수 있는 지혜로움을 터득한다. 그렇게 내일에의 꿈과 희망을 키워나간다.

동남서쪽으로 올망졸망한 7개의 봉우리를 거느린 채로 남북으로 확 트인 조망을 통해 서천의 참 모습을 보임으로써 자력적인 매력에 휩싸이게 한다. 그래서일까, 웬만한 서천 사람이라면 이 천방산을 오르내렸을 것만 같다.


정상에 이르러 서천의 너른 터전을 굽어본다. 그동안의 1세대에 걸친 객지에서 고향의 품에 안긴 이 작은 가슴을 벅차오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멀리 장항 제련소의 굴뚝이 보이는 이곳, 우러러 한이 없는 하늘 아래 서해를 부르며 내닫고 싶어지는 까닭은 또 어인 일일까? 그렇다. 이 천방산은 세상의 어떠한 이름난 산보다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뼈와 살 속에 흠뻑 젖어들었기 때문이리라.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윤동주의 「또 다른 고향」에서)’는 생각이 끊임없이 부풀어 오른다.


천방산千房山에 올라
                        구재기

근원으로 돌아가 보면 
수많은 이름 하나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지나온 시간들이
모두 높고 낮음이 없이
흐르는 물처럼 절로 
아래로만 흘러가는 것입니다
정상에서 세상을 굽어보며
허무하다고 할 때
침묵의 소리를 들으며
빈 허공을 바라보며
즐거운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생각에 즐거움을 가질 일입니다
한 번 더 돌이켜 보면
하늘은 어제처럼 
구름무리를 거느리다가
바람 가는 대로 흘려보내고
그 빈자리에 다시 
새로운 구름을 불러 모읍니다
누가 불러준 것 아니더라도
이 지상에 초대하지 않았더라도 
모두 한 가지로
저 세상으로부터 찾아왔고 
신이 하락하지 않아도
기슭 어디 좁은 자리는 
마련되어 있는 거 아니겠어요
아무도 들어주지 않더라도 
바람은 바람대로 가고
정상에 선 나무들도 
제 잎 한 잎 한 잎 
스스로 지우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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